[못된 엄마 현실 육아] (40) 겁이 없는 아이 vs 겁이 많은 아이

입력 2018-12-27 11:25  



아이가 세 살쯤이었던 어느 여름, 어린이집에서 수영장과 놀이시설이 갖춰진 곳으로 체험학습을 갔다.

아침에 예쁜 수영복에 수영모자에 도시락, 간식을 챙겨보내면서 아이가 그곳에서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지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웬걸. 체험학습 다녀오고 며칠 후 받은 그날의 사진첩 속에는 온통 겁에 질려 하거나 울먹이는 모습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잘 노는데 내 아이는 선생님이 안고 발만 담그려 해도 발버둥 치고 잔뜩 웅크려 있었다. 그러니 이후 모습은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수영장 밖에서 그저 쳐다보고 있는 뒷모습뿐이었다.



놀이기구를 탔을 때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었던 아이는 얼마 뒤인지 선생님 품에 푹 안겨 있었다.

"아 속상해."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내가 함께 보지 못한 광경이라 귀여우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다른 아이들은 체험학습을 맘껏 즐기는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에 '내 아이가 적응력이 떨어진다'라는 생각에 자책감이 들고 속이 상했다.

아이가 평소 조용하고 말썽 피우지 않는 편이라 크게 신경을 안 썼기 때문에 이렇게 낯선 환경에 적응을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큰 아이는 새로운 자극에 개방적이고, 호기심이 많아 어디 가서도 금방금방 적응하고 친구를 잘 사귀기 때문에 그 옆에서 노는 둘째 아이까지 비슷한 성향이구나 막연히 생각했지 각각 별개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해왔다.

둘째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처음부터 편안하게 시작하기보다는 상황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편이었다. 새로운 것이나 낯선 것에 대한 개방성이 낮다 보니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조금 더 하려는 성향이 높았고 혼자 노는 것도 좋아했다.

키즈카페에 가도 큰 아이는 어느새 처음 보는 또래 친구와 짝꿍이 돼서 잘 놀고 헤어질 때면 늘 아쉬워했는데 둘째가 언니가 친해진 사람이 아닌 누군가를 새롭게 사귀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자매가 함께 있는 거니까 잘 논다고만 생각하고 별 걱정 안했었는데.

적지 않게 걱정이 돼서 '겁이 많은 아이'에 대한 여러 전문가 글도 찾아봤다.

아이가 겁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면 서두르지 말고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겁이 많은 아이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2년 쯤 지난 뒤 놀이공원에 가서 "언니는 저것도 탈 수 있다는데 넌 겨우 그게 무서워?"라는 말 대신 "언니는 저걸 탄다고 하고 엄마는 이걸 탈 건데 넌 어떤 걸 타고 싶어?"라고 물어봤다.

전에는 놀이기구는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가 선택의 기로에 서자 놀이기구를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린이 자이로드롭 같은 기구에 자기보다 어린 4~6세 아이들이 타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는 그걸 타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에는 회전목마 외에는 전혀 놀이기구를 타지 못했던 아이가 먼저 놀이기구를 타보겠다고 말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시도에 성공한 아이에게는 엄청난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다.

놀이기구 하나 탄 게 뭐라고. 너무 뿌듯하고 아이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격려가 너무 화가 된 것일까.

겁이 많고 매사 조심성이 있어 사고 칠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점점 의외의 말괄량이 아이가 돼 간다.

얼마 전 퇴근을 앞두고 첫째로부터 "엄마 ○○(동생 이름) 팔이 아프대요"라는 전화를 받았다. 자기가 그렇게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계단 옆 난간에서 미끄러지는 장난을 치다가 팔을 짚으며 떨어졌다는 것.

병원에 데려가보니 골절 진단. 그 겁 많던 아이는 우리 가족 생애 첫 깁스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팔을 다치고서도 아이는 저 멀리 징검다리만 보이면 달려가 이리저리 뛰고 철봉도 가장 높은 데만 거꾸로 매달려 놀곤 한다.

물에 발 담그는 것조차 겁내고 계단 내려갈 때 내 손 안 잡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내 딸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겁이 많아 걱정이었던 아이에게 이제는 너무 겁이 없어 걱정인 날이 왔다.

어려서도 아이가 또래보다 말도 늦고 기저귀도 늦게 뗀다고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말문이 트이는 순간 단어가 아닌 한 문장을 말하던 아이, 24개월 때 기저귀를 뗀 큰 아이와 달리 35개월이 넘어도 기저귀를 하던 둘째는 어느 날 유아 변기 사용 하루 만에 기저귀를 떼고 실수도 없었다. 되돌아보니 아이들은 그렇게 각자 자기만의 속도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




워킹맘 육아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는 네이버 부모i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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