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테러라는 괴물을 막으려면

입력 2018-12-27 17:34  

정치적 利害 따라 테러 조직 위상 갈려
서구는 테러 원인 및 자신의 과오 외면
외과적 공격보다 소프트 파워 전략 절실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



지난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미군 철수를 전격 결정했다. 극단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함으로써 초기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이 철군 명분이었다. 그러나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YPG)를 테러조직으로 보는 터키와 평화유지군으로 보는 미국의 첨예한 갈등이 주요 철군 배경으로 보인다.

그동안 쿠르드 민병대는 미국을 도와 IS 궤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아가 미국은 3만 명 규모인 YPG를 국제평화군으로 무장시켜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의 확산을 저지하려 해왔다. 그런데 터키에는 YPG가 자국 내에서 무장 독립투쟁을 벌이는 쿠르드 노동당(PKK)과 한통속인 또 다른 테러조직에 불과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두 맹방인 미국과 터키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고, 터키가 러시아의 최신 방공미사일 체계인 S-400을 도입하는 극단적 파국으로 치달았다. 설상가상으로 터키는 최근 미군 통제하의 YPG에 대한 대규모 군사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랍 민주화 열풍으로 이집트의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무슬림 형제단은 1년 만에 다시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잃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번에는 이집트 군부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에서도 테러조직으로 낙인찍혀 대대적으로 숙청당했다. 반면 터키와 이란, 카타르 등은 무슬림 형제단을 합법적인 정치집단으로 간주해 이슬람권이 둘로 쪼개졌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나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많은 아랍 국가에서는 합법적인 정치조직이지만 이스라엘이나 서구 일부에서는 테러조직으로 분류한다. 역설적이게도 터키나 이란은 물론 많은 아랍 국가는 이스라엘을 테러국가라고 비난한다.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무차별적인 민간인 표적 공격 때문이다. 이라크 침공으로 많은 민간인을 죽게 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테러 주범으로 몰려 국제형사재판소에 피소된 상태다.

일반적으로 테러는 ‘정치, 종교, 사상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 방법과 수단을 통해 민간인이나 비무장 개인, 단체, 국가를 상대로 위협이나 위해를 가하는 일체의 행동’을 일컫는다. 그러나 테러의 정의나 규정은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저명한 테러 이론가인 월터 라쿠어 교수는 테러 개념을 100개 이상으로 정의했다. 미국 테러 전문가들의 인식의 한계는 테러 개념을 이슬람 정치집단에 초점을 맞추고 공권력 남용이나 국가 테러에 대해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들은 끔찍한 테러 결과에 집착해 이를 궤멸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지만 테러의 근원적 발생 원인과 역사성, 서구의 과오에는 거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한 예로 9·11 테러로 인류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알카에다는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인도양 진출을 막기 위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급성장한 테러조직이었다. 미국의 군사 지원과 사우디 왕정의 든든한 재정 후원으로 소련의 남하를 막아 걸프해 석유라는 미국의 핵심 이익을 지켰지만 적대관계로 돌아서면서 미국에 부메랑이 된 것이다. IS라는 조직도 따지고 보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잘못된 이라크 전쟁이 배태한 악의 씨앗이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몰락한 사담 후세인 잔당이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를 만들었는데 이들이 IS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구촌은 테러라는 괴물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미국 메릴랜드대 테러연구소가 발행하는 글로벌 테러통계(GTD)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7년까지 지구촌에선 18만 건 이상의 테러가 발생했다. 여기에는 8만8000건의 폭탄테러와 1만9000명의 암살, 1만1000명의 납치가 포함돼 있다. 알카에다와 IS가 궤멸된 이후인 올해만 해도 비공식 통계로 1465건의 테러에 7775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됐다.

따라서 테러를 줄이기 위해서는 외과적 공격 일변도보다는 테러 동기 부여를 무력화하는 전략과 함께 약자와 전쟁 피해자를 향한 생계 지원과 일자리 같은 소프트파워 전략을 동시에 가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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