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前부터 급격 인상
2012~2017년 상승률 41.3%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이어 3위
내년엔 주휴수당까지 포함…실질적으로 시간당 1만원 넘어
문재인 대통령 공약 1년 앞당겨 달성
속도조절 아니라 이젠 멈출 때
[ 유승호 기자 ] 새해 시작과 함께 최저임금이 또 오른다. 올해 16.4% 인상에 이어 내년엔 10.9% 올리기로 해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늘어나는 근로자도 있겠지만 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최저임금 제도는 선진국 대부분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어느 나라나 경제 성장과 임금 부담 능력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올린다. 그럼에도 일자리 감소와 소득분배 악화 등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은 한국에서 유독 크게 나타나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 폭이 유난히 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2012년 시간당 4580원에서 2017년 6470원으로 5년 만에 41.3% 올랐다. 연 6~8%씩 꾸준히 인상됐다.
달러로 환산한 상승률도 32.8%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이 기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국보다 컸던 나라는 에스토니아(53.1%)와 리투아니아(52.4%)뿐이다. 일본(8.0%) 영국(6.6%) 프랑스(2.1%) 등 선진국들은 5년간 인상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한국 외에 일본 독일 등이 내년 최저임금을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인상률은 일본(도쿄도 기준) 2.8%, 독일 4.0%에 그친다. 얼마 전 ‘노란 조끼’ 시위대 요구로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 올리기로 한 프랑스도 인상률은 7%로 한국보다 낮다.
근로자 전체 임금 수준과 비교한 한국의 최저임금은 상대적으로 높다. 2017년 기준 한국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은 53%다. 중위임금이 100원이라면 최저임금이 53원이라는 의미다. 독일(48%) 캐나다(46%) 일본(42%)의 예에서 보듯 선진국 중에서도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절반에 못 미치는 나라가 많다. 한때 노동계의 구호가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50% 달성’이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이 목표는 이미 2016년 달성됐다.
노동생산성 증가를 뛰어넘는 최저임금 인상도 부작용을 부르는 요인이다. 한국의 근로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2017년 기준 34.3달러로 OECD 36개 회원국 중 27위다. 반면 최저임금은 14위로 중위권에 속한다.
일부에선 최저임금 인상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험적 근거는 약하다. 조지프 사비아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5년 ‘최저임금이 생산성과 성장을 촉진하는가’ 논문에서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GDP가 0.31%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1979~2012년 미국의 최저임금과 GDP를 분석한 결과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생산은 0.63% 증가한 반면 저부가가치 산업의 생산은 0.95% 감소해 저숙련 분야가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키우고 있다. 한국의 전체 취업인구 중 자영업자 비율은 지난해 기준 25.4%다. OECD 회원국 중 일곱 번째로 높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인건비 지급 부담이 커지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미국(6.3%) 독일(10.2%) 일본(10.4%) 프랑스(11.6%) 등 선진국들은 자영업자 비율이 한국의 절반도 안 된다.
또 한국은 전체 근로자의 90% 가까이가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높여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 쉬운 고용 구조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속도 조절을 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번 내비쳤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24일 최저임금 시급 산정에 주휴수당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최저임금은 명목상으로는 시간당 8350원이지만 주휴수당(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주휴 발생)을 포함해 실질적으로는 시간당 1만원을 넘게 됐다. ‘2020년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공약을 1년 앞당겨 실천했다. 이제 멈출 때가 됐다.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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