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신재민을 죽이려 했나

입력 2019-01-03 13:07   수정 2019-01-03 13:42




(성수영 경제부 기자) 2일 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페이스북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신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잠적 이유에 대한 자신의 ‘추측’을 담은 글이었죠. 다음날 아침 신 전 사무관은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손 의원은 이 글에서 신 전 사무관을 ‘단기간에 큰 돈을 벌기 위해 사기 행각을 벌인 가증스러운 자’로 묘사합니다. 공무원의 박봉에 실망한 신 전 사무관이 지난 7월 퇴직 이후 메가스터디와 계약했지만, 여의치 않은 일이 벌어져 공익제보자 행세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추측입니다. 근거로는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고 4개월동안 잠적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손 의원은 “신재민에게 가장 급한 것은 돈!!”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하고 순진한 표정을 만들어 내며 청산유수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도박꾼의 모든 것을 건 베팅 장면이 떠 오른다”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 가며 신 전 사무관을 비난합니다. 이어 관련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야당에게 “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고 신재민이 왜 잠적했는지를 먼저 알아보라”고도 권유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추측에 대한 근거는 글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KT&G 사장 선임에 대한 청와대 개입이나, 적자국채 발행 강압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은 없었습니다. 손 의원은 다만 신 전 사무관의 심리를 개인적으로 추측했을 뿐이지요. 현직 국회의원이 공익제보를 하겠다고 나선 일개 전직 공무원을 상대로, 본인의 생각만을 가지고 가증스러운 사기꾼으로 매도한 것입니다.

손 의원의 이 같은 행동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증인이었던 고영태씨에게 보였던 태도와 전혀 다릅니다. 손 의원은 당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국민들은 고영태 증인의 신변 안전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고영태 증인이 아니었다면 오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아마 임기 말까지 계속됐을 거고 이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고 씨를 치켜세웁니다. “고영태 증인이 어떤 이유에서였든 본인이 억울했던 그 이야기들을 언론에 제보를 했고 이것이 연결되면서 오늘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그간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적은 없었냐”며 증인의 안전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도 보였지요.

지금 손 의원의 페이스북에서 신 전 사무관을 비난했던 글은 사라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손 의원의 글은 일부 친정부성향 커뮤니티로 즉시 확산됐습니다. 근거 없는 비난은 이어졌습니다. “뭔가 구린 게 사실” “4개월동안 급전이 필요했다면 가상화폐 투자에 실패한 것” 등의 얘기였죠. 물론 이 역시 허무맹랑한 추측입니다.

여권 인사들과 친정부 성향 네티즌들은 폭로 직후부터 앞장서 신 전 사무관을 비난했습니다. 내용에 대한 반박은 드물었지요. “뚱보” “일베(커뮤니티) 하는 게 틀림없다” 등 맥락에 맞지 않는 인신공격이 대부분이었죠. 이 같은 세간의 근거없는 비난은 분명 신 전 사무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 요인 중 하나일 겁니다.

손 의원의 의혹 제기에 합당한 근거가 있었다면, 왜 해당 글을 삭제했을까요? 지난 국정농단 사태 때 고 씨가 유흥업소 출신인 것을 문제 삼아 공격하던 이들과, 국채 발행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신 전 사무관을 공격하던 이들의 행동은 뭐가 다를까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익’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에 유리한 방향을 뜻하는 것일까요?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 전 사무관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끝)/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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