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모호한 추상화에 감동받는 이유, 뇌 속에 있다

입력 2019-01-03 17:36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에릭 캔델 지음 / 이한음 옭김 / 252쪽│1만8800원



[ 김희경 기자 ] 선만 가득한 작품, 형태는 없고 색만 있는 작품…. ‘추상미술’이라고 분류되는 작품들이다. 언뜻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추상미술은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 현대 미술사에도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 사람들은 왜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추상미술에 반응하는 걸까.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는 그 해답을 미술과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뇌과학’에서 찾는다. 바실리 칸딘스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 현대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가로지르며 뇌과학과 만나는 지점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저자는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릭 캔델 컬럼비아대 사회의료학 교수다.

캔델에 따르면 추상미술을 보고 인지한 뇌는 ‘하향 처리’를 활발하게 진행한다. 뇌가 시지각을 처리하는 것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상향 처리와 하향 처리다. 상향 처리는 단순한 계산 과정에 해당한다. 이미지를 보며 윤곽, 경계, 선의 교차 등 핵심 요소를 인지하고 추출하는 방식이다. 하향 처리는 보다 고차원적인 정신 기능을 이른다. 이미지를 통해 또 다른 뭔가를 연상하거나 기억해낸다.

특히 모호한 이미지를 볼수록 하향 처리가 활발히 이뤄진다. 상향 처리만 할 때는 모호한 이미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이 때문에 뇌는 하향 처리를 더욱 열심히 한다. 추상미술이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런 모호함 덕분이다. 모호한 이미지로 감상자가 생각할 몫을 많이 남겨뒀기 때문에 하향 처리가 더욱 활발히 진행되는 것이다.

이질적 분야인 미술과 뇌과학을 연결시키는 것이 억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환원주의’를 내세우며 두 분야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환원주의란 다양한 현상을 기본적인 하나의 원리나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미술 특유의 시각성은 뇌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기도 한다. 미술은 인간의 여러 감각 중에서도 시각을 주로 자극한다. 눈앞의 미술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느낀다. 때로는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이미지와 비슷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같이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에 해당한다.

미술과 뇌를 연결짓는 노력이 제대로 된 감상을 방해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추상미술 화가들 스스로가 이런 점을 활용해 작품에 녹여왔다. 로스코는 모든 이미지를 색으로 환원해 독특한 기하학적 추상화를 발전시켰다. 그는 평소 “정형화된 연상들을 파괴하기 위해선 사물들의 익숙한 정체성을 산산조각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말한다. “추상미술은 미술을, 그리고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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