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EU 구조 바꾸려는 '한자 2.0'

입력 2019-01-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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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함부르크 뤼베크 등 독일 지역 상인들이 영국 런던에서 ‘한자동맹’을 처음 결성한 건 11세기 중반이었다. 영국과의 교역을 독점하기 위한 조합체였다. 이들은 영국의 양모와 수산물을 대륙에 팔고 대륙의 곡물이나 목재를 영국에 팔았다. 13세기 들어 한자동맹은 노르딕과 발트해 무역을 거의 독점했다. 여기에 플랑드르(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의 상인들이 맞붙었다. 상인들 간 싸움이 격화되자 독일 도시가 나섰다. 상인 동맹에서 도시 동맹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한자동맹은 14세기 후반부터 차츰 쇠퇴한다. 국민 국가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플랑드르 지역의 도시들이 끊임없이 이들을 공격한 결과다.

영국 역할 대신해 EU 개혁

지난해 2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국가들과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노르딕 국가, 아일랜드가 한자동맹의 부활을 외치며 다시 뭉쳤다. 언론들은 이들을 ‘한자동맹 2.0’이라고 불렀다. 한자동맹 2.0을 주도하는 국가가 플랑드르의 후예 네덜란드라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들은 유럽연합(EU)에 속해 있다며 분열 조장 비판에 선을 긋는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지난해 6월 EU의 장래를 그리는 연설에서 “정치적 통합보다는 주권 국가들이 단일시장과 자유무역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한자동맹 2.0의 탄생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영향이 크다.

그동안 EU에서 정치 통합보다 경제 통합을 우선했던 국가는 영국이었다. 프랑스 독일의 대륙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브렉시트로 영국이 빠져나가면 영국의 역할을 대신해 대륙 세력에 맞서겠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사이먼 코브니 아일랜드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4월 연설에서 한자동맹 국가들을 자유무역으로 연결된 ‘가치 동맹’으로 규정하며 “중동 아프리카 문제 등 EU의 외교 정책에도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합의한 유로권 공동예산 확충에 반대한다. 어차피 예산을 늘리면 북유럽 국가들이 많이 갹출해야 하는 건 명약관화하다.

비즈니스 장애물 깨는 데 주력

정작 이들의 불만은 EU 관료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도덕제국(Moral Empire)’을 강조하는 EU에 엄청난 불만이 쌓여 있다. 에너지·외교·안보·환경·기술 문제에서 첩첩이 쌓인 규제의 덫은 이들 국가의 자유스러운 무역 통상 기질과 완전히 배치된다. 지난달 EU는 2021년부터 빨대와 면봉 등 플라스틱 일회용 제품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런 규제에 염증이 나 있는 국가들이다. 이들이 지난해 집행위원회에 내부 시장의 장벽과 비효율을 없애 달라고 강력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금융 통합, 재정 통합이라는 거창한 슬로건 대신 비즈니스 장애물을 깨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제조업보다 서비스나 무역으로 성장한 나라들이다. 지금 서비스업에서 규제를 빨리 풀고 개방하지 않으면 21세기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위기감이 이들 국가에 팽배해 있다.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디지털에서 뒤처지는 것도 이런 규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EU는 디지털세금에 대한 논의만 활발할 뿐이다. 영국이 이 동맹 국가들과 친하려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20세기 유럽의 생산 구조와 질서는 프랑스 독일이 만들어 냈다. 정의와 바름의 기치 아래 온갖 규제와 통제를 동원했다. 브렉시트가 낳은 EU의 패러다임 변화가 점점 커지고 있다. 21세기는 이런 규제 속에서 살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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