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兆 생산 능력 목표
직판체제 땐 개발~판매 일원화…수수료 20% 낮춰 경쟁력 강화
美·유럽 등 이미 20여국 지사 설립…"글로벌시장 공략 '9부 능선' 넘어"
소유·경영 철저히 분리
창업 다졌으니 후배에 도약 맡겨…아들은 이사회 의장으로만 활동
"올해도 회장 아닌 해외영업맨으로 은퇴 후 '도시어부'로 살겠다"
[ 전예진 기자 ]
“저는 사업기획자나 마찬가지예요. 사업 아이디어를 내면 전문경영인들에게 추인받는 과정을 거치죠. 언젠가 이들에게 회사 경영을 모두 맡기려고 합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최근 사석에서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털어놓곤 했다. 특유의 추진력으로 회사를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올려놓은 만큼 창업자로서 역할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서다. 서 회장이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은퇴를 공식화한 것은 이런 평소 생각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바이오벤처 1세대인 서 회장이 은퇴 계획을 공식 선언한 배경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셀트리온의 입지가 그만큼 탄탄해졌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왜 떠나나
셀트리온은 지난해부터 글로벌 유통망을 구축해왔다. 현재 미국, 유럽, 일본, 싱가포르, 브라질 등 20여 개국에 지사를 세웠고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등에도 지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를 거치지 않고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유통망을 직접 구축하는 것은 셀트리온이 처음이다.
서 회장은 “직판체제는 우리나라 제약사들이 1400조원의 제약 시장에 나갈 수 있는 고속도로를 닦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셀트리온의 유통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른 제약사 제품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해외 의약품 유통 파트너 수수료율이 평균 40%에 달하는데 직접 하면 15~20%로 낮출 수 있다”며 “원가경쟁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다른 제약사들도 따라올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와 합성의약품 개발-생산-유통 체계 구축을 회사 성장의 1단계 목표로 설정해왔다. 내년 말에는 이 목표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서 회장의 생각이다.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겠다는 게 서 회장의 구상이다.
“소유-경영 분리할 것”
셀트리온그룹을 이끄는 주축 전문경영인은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과 김형기 셀트리온헬스케어 부회장 두 사람이다. 기 부회장은 연구개발과 생산 부문을 총괄하고 김 부회장은 유통과 판매 부문을 이끌고 있다. 기 부회장과 김 부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전면에 나선 것은 2015년이다. 서 회장은 두 사람에게 셀트리온 대표이사 자리를 내주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가동했다. 지난해 초에는 기 부회장은 셀트리온, 김 부회장은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를 맡도록 해 그룹 경영의 역할을 나눴다. 이 때문에 서 회장이 3~4년 전부터 은퇴를 위한 수순을 밟아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2015년부터 서 회장이 직원들에게 나이가 더 들어 판단이 흐려지기 전에 은퇴하겠다는 말을 해왔는데 이번에 은퇴 계획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해 본인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승계 문제와 은퇴 이후 계획도 밝혔다. 그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며 “아들은 최고경영자(CEO)를 시키지 않고 이사회 의장으로만 참여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서 회장은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서진석 셀트리온스킨큐어 대표가 장남이고 서준석 셀트리온 과장이 차남이다. 서 회장은 “은퇴 후엔 잠을 좀 자고 ‘도시어부’로 살면서 뭘 할지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올해는 회장이 아닌 셀트리온헬스케어 영업본부장으로서 해외에서 일할 것”이라며 “2020년 생산 규모 4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제약시장 공략 9부 능선 넘었다”
서 회장은 이날 “셀트리온그룹은 지난해 1425조원 규모의 세계 제약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셀트리온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작년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와 허쥬마를, 셀트리온제약은 에이즈 치료제 테믹시스의 판매 허가를 받았다. 올해는 램시마SC의 유럽 허가를 앞두고 있다.
서 회장은 “2030년까지 자가면역질환과 항암 분야 바이오시밀러 총 25개 제품을 개발할 것”이라며 “168조원 규모 글로벌 항체 의약품 시장에서 2035년까지의 먹거리는 준비된 셈”이라고 했다.
3세대 항암제로 주목받는 면역치료제 개발 계획도 밝혔다. 그는 “면역치료제 3개를 개발하고 있는데 지금 임상을 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어 일단 바이오시밀러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2027년 이후부터 출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