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국의 명장(名匠)들

입력 2019-01-06 17:43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현악기 명장(名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평생 1100여 개의 명품악기를 제작했다. 그의 이름을 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리는 악기 중 바이올린 540개, 비올라 12개, 첼로 50개가 남아 있다. 그는 특수한 단풍나무 재질에 자신만의 심미안, 섬세한 감각, 고도의 기술을 접목해 명기(名器)를 완성했다.

그의 경지에 가장 근접했다는 찬사를 받은 인물은 2012년 타계한 재일 한국인 진창현 씨다.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추앙받고 있는 그는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익혔다. 피나는 노력 끝에 1976년 ‘국제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 6개 부문에서 5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고향인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열린 국제현악기제작 콩쿠르에서 한국인 정가왕 씨가 첼로 부문 금메달을 따며 명장의 후예가 됐다. 현지에서 명장으로 활동 중인 박지환 씨도 이 대회에서 첼로 은메달, 바이올린 동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최근 국내 제과제빵 명장인 김영모 씨의 아들 김영훈 씨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국가 지정 명장(MOF)에 뽑혔다. MOF는 1924년 신설한 장인육성 제도로 4년마다 제빵·제과·보석공예 등 200여 개 분야 명장을 선발한다. 이를 통해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와 일본의 장인(匠人) 같은 최고 전문가들이 탄생한다.

우리나라에도 국가명장 제도가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매년 분야별 명장을 선정한다.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는 예술 부문 명장을 지정한다. 주요 기업들도 명장 육성에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삼성 명장’ 제도를 신설하고 최고 전문가 4명을 선발했다. 인쇄회로기판의 이철, 금형의 이종원, 반도체 계측의 박상훈, 반도체 조립 설비의 홍성복 씨가 주인공이다. 2015년부터 명장을 뽑아온 포스코는 지난해 포항제철소 이경재 씨, 광양제철소 배동석 씨, 기술연구원 한병하 씨를 철강 명장으로 선정했다.

아직까지는 일본이나 유럽만큼 명장의 전통이 길지 않다. 일본에는 700년간 가업을 이어온 ‘일본도(日本刀) 장인’ 등 20~30대째 명장 가문이 많다. 예부터 “명장의 손끝에서는 향기가 난다”고 했다. 그 향기는 역경을 이기는 연마와 숙련 과정에서 나온다. ‘천상의 바이올린’이란 평을 들은 진창현 씨도 “나를 키운 건 ‘8할이 역경’이었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부자(父子) 명장’이 된 김영모 씨는 “숙련기술이란 등산과 같아 오를수록 더 힘들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고 가라”고 했다. 아들이 방황할 때 들려줬다는 조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입구까지만 가본 사람들은 정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절대 알지 못한 채 그저 불평만 하다 끝난단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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