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서 파업 전야제, 조합원 1만여명 집결 목표
허인 행장, 페이밴드 폐지 끝내 거부…노조 "협상 막판 말 바꿔"
"직원들의 권리를 되찾을 때까지 파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KB국민은행 노동조합(노조)이 1박2일 총파업 일정에 돌입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조합원들은 붉은띠를 머리에 두르고, 피켓을 들어 단결을 외쳤다.
7일 국민은행 노조는 서울 송파구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파업 전야제를 열었다. 노조는 밤샘 집회 후 오는 8일 19년 만에 처음으로 총파업에 나선다. 이후 노사 협상에 진전이 없을 시 이달 31일, 다음달 1일 이틀에 걸쳐 2차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파업 전야제는 이날 오후 9시에 시작됐다. 잠실 학생체육관은 오후 8시가 채 되기도 전에 붉은 깃발이 펄럭였다. 서울과 수도권에 지점을 둔 조합원들이 가장 먼저 자리를 채웠다. 이어 9시30분께 대전, 대구 등지의 조합원들이 대절 버스를 타고 체육관에 도착했다. 6000여 석에 달하는 학생체육관의 좌석을 빼곡하게 메웠다. 노조 측은 조합원 1만여명이 파업에 참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체육관 내부에는 '약속을 지켜라', '산별합의 이행하라', 쟁취하자! 임단투 승리' 등을 담은 현수막이 곳곳에 붙었다. '말로만 최고의 보상, 경영진은 사퇴하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눈길을 끌었다.
조합원들은 '총파업'이라는 글자가 적힌 붉은띠를 머리에 동여맸다. 손에 든 피켓에는 "산별합의 준수하고 조합원과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문구가 적혔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A씨(강동구 지점)는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약속을 번복하는 경영진들에 실망해서 파업에 나서게 됐다"며 "지점에 속한 14명의 직원 중 비조합원에 해당하는 지점장을 제외하고 11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측이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까지 파업에 끝까지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총파업 선두에서 조합원들을 격려했다. 무대 위에 오른 박 위원장은 "노조는 고객을 위해, 국민을 위해 파업 만은 막으려 했지만 경영진들이 막판에 말을 바꾸었다"며 "경영진들은 파업에 나서라며 노조의 등을 떠밀며 뒤에서는 언론 플레이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은행 노사는 지난 6일(일요일) 저녁 7시부터 이날(월요일) 새벽 5시까지 밤샘교섭을 지속했다. 이어 이날 오전11시30분부터 오후 4시15분까지 다시 교섭을 진행했다.
박 위원장은 "허인 행장이 새벽까지 긍정적으로 논의했던 사안들을 오전 교섭에서 갑자기 말을 바꿨다"며 "산별합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사측 안건 수용을 협상의 카드로 삼았다"며 교섭이 결렬된 이유를 설명했다.
노조는 지난 주말동안 사측이 직원들의 파업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부당 노동행위를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경영진들이 점포장과 본부장들을 몰아세우며 직원들의 파업 참여를 저지했다"며 "지난 주말동안에도 직원들에 회유 전화를 돌리고, 파업에 참여한 직원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했다"고 규탄했다.
허인 행장은 이날 오후 직원 담화방송에서 "보로금에 미지급 시간 외 수당을 합쳐 300%의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조건을 내걸었다. 전 직원에 페이밴드 확대 적용·임금피크 진입 시기 등을 사측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파업 전야제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건부 성과급 300%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신입행원들에게 적용된 페이밴드(호봉상한제) 폐지 △임금피크제 진입 시기 1년 연장 △기간제 근로자의 무기계약직 전환 등을 끝까지 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국민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파업에 대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파업 당일 모든 영업점을 정상운영할 계획이다. 지역마다 거점점포도 운영한다. 다만 특정 영업점에서 업무 처리가 어려운 경우 인근 영업점으로 고객을 안내하거나 거점점포를 통해 업무를 처리할 방침이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서비스는 정상 운영된다. 정보기술(IT)센터 인력에서 KB데이터시스템 등 외주업체 비중이 높은 만큼 전산에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의 대응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불편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 고객은 물론 기업 고객의 자금결제에도 혼선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은행의 신뢰도 하락과 고객 이탈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영업점을 정상 운영한다고는 하나 파업 참여 인원이 많은 지점일수록 고객들이 받는 피해가 클 것"이라며 "브랜드 이미지, 은행 신뢰도 등을 고려하면 파업으로 인한 은행의 피해 예상 규모도 추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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