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레드', 은유의 언어로 쌓고 강렬한 색으로 완성하다

입력 2019-01-13 17:58  

리뷰 - 연극 '레드'


[ 김희경 기자 ]
언어로 쌓아 올리고 색으로 완성한다. 지난 6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레드’ 얘기다. 이 작품은 ‘은유의 향연’이라 할 만큼 다양하고 함축된 의미의 대사들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또 주역들은 캔버스를 붉게 물들여 무대를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만든다.

레드는 신시컴퍼니가 제작하고 김태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야기는 화가 마크 로스코(강신일 분)가 뉴욕의 한 레스토랑 벽화를 의뢰받은 뒤 돌연 계약을 파기한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로스코는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러시아 출신 미국 화가다. 그의 일을 돕는 동시에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김도빈 분)도 등장한다. 2010년 미국 토니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최다 부문을 석권했으며 2011년 국내 초연 때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이번 무대는 2016년 공연 이후 2년 만이다.

로스코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 특히 추상표현주의가 입체파를 몰아낸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세대교체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새로운 사조인 팝아트의 등장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켄은 로스코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의 확고한 생각에 균열을 낸다.

로스코의 불안은 예술과 인생에 대한 각종 은유를 타고 더 명확하게 부각된다. 로스코는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하는 거야”라고 얘기하며 추상표현주의의 승리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블랙이 레드를 삼키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는 얘기로 팝아트에 대한 내면의 두려움을 표출한다.

극중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흰 캔버스가 붉게 물드는 순간이다. 두 사람은 무대 중앙에 커다란 캔버스를 놓고 함께 붓을 들고 새빨간 물감을 칠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대사를 쏟아내던 그들도 이 순간만은 말이 없다. 거친 숨소리만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예술가들의 살아 숨 쉬는 열정을 느끼고, 강렬한 ‘레드’에 압도된다.

무대 배치는 단순한 편이지만, 소품 활용도가 높다. 물감통과 붓 등이 나열돼 있으며, 두 사람은 이를 활용해 색 배합을 직접 하기도 한다. 또 로스코는 무대 한쪽에 놓여 있는 LP 턴테이블로 음악을 바꿔 틀며 분위기를 전환한다. 공연은 다음달 10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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