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적 규제·자국기업 중시
"더 못버텨"…지분 매각 속출
작년 11월 직접투자 27% 감소
[ 김형규 기자 ]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현지법인 지분을 매각하는 등 사업 규모를 줄이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 여파로 중국 경기가 둔화할 조짐을 보이는 데다 정부 당국의 과도한 규제, 중국 소비자의 민족주의 성향 등 위험 요인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과거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최대 인구를 잡기 위해 앞다퉈 중국에 들어갔던 것과 반대로 앞으로는 ‘차이나 엑소더스’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미국 거대 미디어기업 비아콤이 중국 합작법인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아콤은 당국의 규제에 막혀 중국에서 사업 확장이 뜻대로 되지 않자 지분을 매각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중국 현지 기업과 지분 매각을 논의하고 있다며 현지 기업 지분율을 높여 규제 압박을 피해 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비아콤은 영화 제작사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음악 채널 MTV, 어린이 채널 니켈로디언 등을 보유한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다. 1990년대 중반 중국에 진출했으며 2005년 중국 국유기업 상하이미디어그룹과 합작 투자를 통해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미디어 기업의 지분 49%를 소유했다.
중국에서 발을 빼려는 기업은 비아콤만이 아니다. 맥도날드와 휴렛팩커드(HP)도 중국 합작법인 지분 매각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이미 2017년 합작법인 지분 80%를 중국 중신그룹(52%)과 미국 사모펀드 칼라일(28%)에 넘긴 바 있다.
차량 공유기업 우버도 2016년 중국 법인인 우버차이나를 중국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에 팔았다. 제약기업 카디널헬스는 지난해 중국 제약 유통 사업을 현지 업체에 넘겼다. 하이네켄도 중국에서 운영 중인 대규모 양조장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WSJ는 이들 회사 외에도 수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해온 다국적 대기업들이 현지법인 지분을 팔거나 중국 사업을 아예 접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한때 글로벌 기업들에 기회의 땅이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시장 개방을 확대하면서 세계 각국 기업이 13억 명의 소비시장을 잡기 위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외국인의 대(對)중국 직접투자는 전년 동월보다 27% 감소했다. 컨설팅기업 알릭스파트너스 관계자는 “지난 20년간 많은 기업이 중국 진출에 필요한 방안을 문의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 기업들에 중국 사업을 어떻게 정리하고 나갈지를 조언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당국의 지나친 규제를 애로사항으로 꼽는다.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가 여전히 심해 ‘차이나 챌린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가 신청한 위안화 결제 사업 허가를 1년 넘게 거부하고 있다. 외국 기업을 차별하고 있다는 WTO 지적에 따라 관련 규정을 개정해 놓고도 막상 신청이 들어오자 허가해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국 기업을 우선시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민족주의 성향도 글로벌 기업들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서도 중국 기업이 기술력을 갖추게 되면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중국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 조짐도 차이나 엑소더스의 원인으로 꼽힌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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