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노동시장 빅딜설'의 불합리

입력 2019-01-1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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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 박기호 기자 ] 기해년 새해 벽두부터 노동시장에서 빅딜설이 뜨겁다. 지난 1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면담이 빅딜설의 계기다. 골자는 탄력근로 확대를 노동계가 받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사용자 측이 수용하는 형태로 패키지 처리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으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반영됐다. ILO 핵심협약은 모두 8개로 우리나라는 4개만 비준한 상태다. 비준되지 않은 4개 가운데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은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협약이다. 이 협약이 비준되면 특수형태업무종사자·실업자·해고자·5급 이상 공무원의 조합 가입과 비노조원의 조합 임원 출마를 허용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실익 한쪽에 치우치는 빅딜

딜(거래)은 참여 주체들이 실익을 엇비슷하게 나눠 가질 때라야 성사 가능성이 높다. 빅딜이라면 명분도 있어야 하고, 이해 관계자가 많은 만큼 사회적 동의도 필요하다. 이런 잣대를 들이대면 탄력근로 확대와 ILO 핵심협약 비준을 패키지로 빅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실익부터 따져보자. 탄력근로 확대는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 시간을 6개월로 연장하는 것이다. 산업계는 탄력근로가 확대되더라도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획을 미리 세워 집행해야 하는 탓에 예고 없는 경영 여건 변화에 대처하기 힘들고, 유연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계 처지에서 볼 때 강력한 응원군이다. 전문가들은 해고 근로자나 비노조원의 노조 활동 참여가 가능해지면 노동운동의 투쟁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선명성 경쟁으로 불법쟁의 등에 나섰다가 해고된 노조 간부들이 가세하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협약 비준에 대비해 추진되는 관련법 개정안은 ‘기업의 효율적 운영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의 참여’를 규정하고 있으나 노동계는 ‘수용 불가’다. 실익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마당에 성사 가능성은 차치하고 빅딜이라는 용어 사용이 타당한가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상황이다.

'사측 팔 비틀기' 변질될 수도

출발선도 불합리하기는 마찬가지다. 탄력근로 확대는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보완책 성격이 강하다. 탄력근로 확대와 핵심협약 비준을 주고받는 형태로 빅딜한다는 발상은 적절치 않다. 어느 쪽은 부담이 덜 하고, 그 상대방은 혜택을 더 보는 셈법은 거래에서 통용될 수 없다. 노동법학계는 “개별적 근로관계에 해당하는 탄력근로 확대와 집단적 노사관계인 핵심협약 비준을 패키지로 처리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빅딜을 추진하는 주체도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탄력근로를 수용하는 주체는 노동계이지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모두 반발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나면 합리적 노사관계 개선을 위한 지렛대도 사라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政)이 아무리 애쓴들 성사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계속 남는다. 노사 간 대립과 이견으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에서 결실을 얻지 못한 과거와 다를 바 없다. 노동정책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를 뒷전으로 한 빅딜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도 미지수다.

실익과 명분은 물론 주체의 적정성도 결여한 빅딜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하다. 만약 성사된다면 그것은 ‘노정(勞政)에 의한 사(使)측 팔 비틀기’와 진배없다.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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