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의 '사업가 초등학생論'
[ 전예진 기자 ]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기업인의 성장 단계를 초등학생에 비유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1학년,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2학년은 본능에 충실한 시기다. 기업가정신이 싹트는 3학년에 애국자가 되고 상생과 공존을 생각하는 4학년을 거쳐 5학년이 되면 다음 세대에 어떻게 기억될지 두려움을 가진다. 현재 5학년까지 왔다는 서 회장은 2020년 말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갑자기 은퇴를 발표한 것은 아닙니다. 2015년부터 임직원에게 계속 얘기해왔어요. 2020년은 제가 65세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지켜본 많은 경영자가 65세를 넘어서면 판단력이 흐려지더군요. 그 전에 떠나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서 회장은 “창업자일수록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된다”고도 했다. “저처럼 허허벌판에 성을 쌓은 사람들은 자기가 손만 대면 성공하는 미다스의 손인 줄 압니다. 교만하게 된다는 얘기죠.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자꾸 새로운 걸 하게 돼요. 그러면 회사 규모는 커지는데 실속은 없게 됩니다. ‘축성(築城)’한 사람은 물러나고 다음 세대가 ‘수성(守城)’하게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은퇴 후 6학년이 되면 창업 아카데미를 세우는 게 서 회장의 꿈이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체득한 경험과 교훈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몇 년 전부터 뜻이 맞는 창업자를 모으고 있다. “1, 2학년 단계인 창업자의 본능을 자극시켜 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여기서 더 성장하면 앞으로 닥칠 난관들은 이런 것들이고 나는 이렇게 해결했다고 얘기해주려고 합니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운칠기삼(運七技三)’을 명심하라고 조언했다. “내가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해도 30%의 필요조건만 가진 것입니다. 70%의 운이 없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 운이라는 건 결국 나를 돕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옵니다. 장사는 나 혼자 똑똑하면 되지만 사업은 혼자 잘났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제 아들들을 해외로 유학보내지 않은 것도 잘난 척하고 다른 사람을 지적질할까봐서였습니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참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사업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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