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정진 기자 ] 1990년대는 냉전체제가 끝나고 세계화로 국경이 열리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은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말한 ‘국제분업 관점에서 자유무역’이 결실을 맺을 것이란 환상을 품었다. 하지만 근로자층은 해외에서 유입되는 값싼 노동력과 자동화 시스템 등으로 희생양이 됐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이 쓴 《우리 대 그들》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둘 사이의 갈등을 통해 표를 얻는 ‘포퓰리스트’로 정의한다. 트럼프는 중국을 관세로 위협했고 멕시코 접경지역을 넘으려는 남미인을 향해 최루탄을 쐈다. 책은 이런 포퓰리스트들이 대중을 포퓰리스트로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2년 버락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 중 28%는 4년 후 트럼프에게 표를 줬다.
이런 모습은 세계인을 빠른 속도로 연결해줄 것으로 믿었던 정보기술이 ‘장벽’으로 바뀌면서 가속화됐다. 사상과 정보가 즉각적으로 전달되면서 시위는 쉽게 조직할 수 있었고 전쟁과 테러는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사람들은 파편화된 정보들을 보며 이른바 ‘필터 버블’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어떤 정당을 선호하고 어떤 뉴스를 보는지 파악한 뒤 필터링된 단편적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다. 무절제한 연결을 차단해주는 장벽이 ‘그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벽이 높아질수록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정체성과 사회시스템의 가치엔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포퓰리스트들을 향한 조롱과 무시, 파편화된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말고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사회계약을 통해 포퓰리즘과 그에 기생해 이익을 취하는 포퓰리스트를 배격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서로를 향해 더 높은 장벽을 쌓는 데 열중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이안 브레머 지음, 김고명 옮김, 더퀘스트, 272쪽, 1만7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