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식 기자 ] 오는 2월27일 열리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판이 커지고 있다. 한국당 내 차기 대선주자들이 죄다 당대표 경선에 뛰어든 모양새다. 다음 대선이 아직 3년 넘게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력 주자들이 당권 도전에 나서는 것은 세력 확장을 위해서다. 차기 당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에게 뿌리치기 힘든 매력일 것이다.
당내 주자들이 대거 등장해 ‘대선 예비 경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만큼 이번 전당대회는 한국당으로서는 변곡점이다. 여느 전당대회와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한 한국당의 재건 가능성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놔야 하는 자리다. 국민들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다음 대선에서 표를 줄 만하다, 아니다를 판단할 것이다. 당권 주자들이 나라를 믿고 맡길 만하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집권 가능성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당 전당대회 벌써 계파싸움
한국당은 이미 몇 차례 쇄신안을 내놨지만 그때마다 말뿐으로 끝났다. 반성과 쇄신은커녕 ‘네 탓’ 집안싸움만 되풀이하다 흐지부지됐다. 한국당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체성의 위기’다. 보수 가치는 작은 정부, 낮은 세율, 시장경제, 법치주의, 자기책임, 사유재산권 존중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보수 본류’라고 자임하는 한국당이 표를 얻는 데만 급급해 이런 보수의 기본 가치들을 내팽개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보수 가치에 충실하지 못하니 정권을 빼앗긴 뒤에도 여당과 치열한 이념 경쟁을 벌이며 정책을 제대로 견제하는 야당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당은 지난해 말 아동수당 등 복지예산 증액에 앞장서 여권을 표정관리하게 만들었다.
한국당은 이제라도 보수정당으로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국당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과거와 다를 바 없다. 당권 레이스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친박(친박근혜)-비박’ 편가르기가 표면화되고 있다. 보수 재건, 가치 재정립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또다시 패거리 정치가 꿈틀대고 있다. 과거의 틀 속에 갇혀 가던 길을 그대로 가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보수 이념·가치 놓고 경쟁해야
한 자릿수까지 추락했던 한국당 지지율이 최근 다소 올랐다고 하나 현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일 뿐이다. 일부 당협 위원장을 ‘공개 오디션’으로 뽑은 단발성 이벤트로 당을 쇄신했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다.
한국당만이 보수 가치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른미래당이 좌파정당과 다를 게 없는 경제정책을 내놓고도 ‘보수의 희망’이라고 자임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보수 정당이라고 하는 두 당조차 이럴진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보수 가치가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기를 바라겠나. 보수 진영의 유튜브에 사람이 몰린다고 해서 보수 정치가 인정받고,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보수 정당의 활로는 보수 가치를 굳건히 하는 토대 위에서 새롭게 열릴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에 충실하고, 안보를 믿고 맡길 수 있으며, 경제를 살릴 진정한 보수 정당을 원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한국당 당권 주자들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보수 이념과 가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제대로 된 좌표를 설정하지 못하면 보수 재건 기회는 한동안 다시 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경제 등 각 분야에서 넘치는 좌파적 정책들은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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