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춘호 기자 ] 1년 전, 세계 경제는 금융위기 이전의 호황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호경기는 시작하기도 전에 끝날수도 있다. 불황이 곧 닥친다는 뜻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여전히 올해 세계 경제가 3.5%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두 번 하향 조정됐다. 브라질 중국 일본 독일 러시아 영국의 지난해 성장률은 이전 8년간 평균을 밑돌았다.
경기 성장세를 둔화시킨 단기적인 요인은 미·중 간 무역마찰과 금융긴축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중앙은행들이 위기 이후에 돈을 왕창 풀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긴축하는 규모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렇게 완만한 긴축이 성장 둔화를 불러오는 이유는 뭘까.
대부분 국가들이 ‘저성장 균형’에 빠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와 같은 고금리로는 견딜 수 없는 상태다. 경기를 냉각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수준을 뜻하는 중립금리는 이전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재 미국 중립금리는 0.5%로 역사적 수준인 2%를 밑돈다.
고금리 못견디는 저성장 시대로
저성장 균형의 주된 원인은 인구 동태와 생산성이다. 노동인구 증가율이 전보다 더 낮아졌고 생산성도 이전만큼 늘지 않고 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낮은 중립금리는 투자가 저축에 비해 구조적으로 부족한 데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인구 동태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근로자도 고객도 줄기 때문에 투자도 준다. 투자가 줄면 성장률은 낮아진다. 서머스가 말하는 장기정체 상태다.
중국 경제가 서머스의 주장에 부합하는 사례다.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인프라에 중점 투자한 덕분에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국내총생산(GDP)의 8~12%에 달하는 재정적자, 금융완화, 저금리에 힘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투자 성과는 줄어들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효율성을 설명하는 총요소생산성은 금융위기 전에는 해마다 2~5%씩 늘어났지만 위기 이후엔 겨우 연 0.5~2%에 그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종전 규모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매년 많은 자금을 빌려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인프라 투자 과열로 채무 위험 증가를 우려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인프라 투자의 증가율은 위기 전엔 평균 연 15~20%였지만 지난해 11월에는 3.5%로 떨어졌다. 인구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해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 수는 전년 대비 12% 줄어 1961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약간의 긴축도 고통 초래
미국 경제가 최근 강세를 보인 것도 작년부터 전개된 감세와 재정지출의 확대 그리고 유가 상승에 따라 늘어난 셰일 투자 등에 의한 것이다. 이제 재정지출이나 유가 상승은 더 이상 반복될 것 같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경제가 지난해 4분기에는 2.6%(연율 기준), 올해 1분기에는 2.2%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구 전망도 어둡다. 지난해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 수는 1987년 이래 가장 적었다.
이런 상태가 세계가 곧 침체기로 들어간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신중한 작업이 필요하다. 저성장의 세계에서는 아주 작은 금융긴축도 길면서 고통스러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정리=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이 글은 그레이그 입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가 기고한 칼럼 ‘The Global Boom, Barely Begun, May Be Over’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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