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70%가 한국에서 하면 불법에 해당합니다. 한국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서 연구 및 서비스를 할 수 없습니다. 규제의 합리화와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사진)은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회 과학기술혁신성장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바이오 경제 시대의 도래가 예상되는데, 한국은 규제가 바이오 혁신성장과 새로운 사업 시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은 바이오 경제 시대를 대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며 "우리도 선진국 수준의 규제 합리화를 통해 급속한 기술발전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2017년 새로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과 제품의 규제에 대한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 액션 플랜(DHIAP)을 내놨다. 개별 제품이 아니라 제조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다. 요건을 갖춘 기업에 자격을 부여하고 이 기업 제품의 인허가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2016년에는 21세기 치료법을 제정해 첨단재생치료법에 대한 신속허가 및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우선 승인 검토 등 규제를 정비했다.
유럽은 지난해 5월 일반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도 2018년 5월 차세대 의료기반법을 통해 개인이 거부하지 않는 한 제3자에게 의료정보의 제공이 가능토록 했다.
김 원장은 규제개선 과제로 우선 유전자치료 연구의 대상 질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연구 대상 질환에 제한이 없다. 한국은 유전병,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그 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 등에만 유전자치료 연구가 가능하다.
소비자 직접의뢰 유전자검사(DTC)의 경우에도 미 FDA는 48종 질병에 대한 질병예측성 검사 등을 허용한다. 한국은 체질량 혈당 혈압 등 12개 항목으로 제한하고 있다.
김 원장은 "바이오 산업은 국민 건강과 안전에 직접 연관돼 이해관계자간 갈등이 첨예하고 법률 개정 등에 장기간이 소요된다"며 "합리적 규제를 위한 규제 과학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사례로는 영국의 헬릭스(HeLEX)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옥스퍼드 대학에 2009년 설치된 헬릭스는 바이오 분야 신기술에 적합한 새로운 법적 틀을 모색한다. 기술이 앞에 가고 규제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거의 동시에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제 연구 과정을 통해 신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규제의 틀로 해소해간다는 설명이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현장에서 느끼는 세부적인 규제로 중국 전임상 결과의 미인정을 꼽았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도 인정하는 중국 전임상 결과를 국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결과만 인정한다는 규정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가 개발하는 궤양성대장염 치료제의 경우 중국 전임상 결과로 미국 임상 1상을 마치고, 국내와 미국에서 동시에 임상 2상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규제로 국내에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주제발표 이어진 토론에서 강도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유전자치료 연구대상 확대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와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며 "조만간 입법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DTC도 검사 항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포럼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연구기관인 민주연구원과 추미애·노웅래 의원실과 공동 주최로 열렸다.
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장이기도 한 추 의원은 "기업에서는 바이오 육성은 없고 규제만 있다고 말한다"며 "혁신성장추진위는 바이오 산업에 대한 별도 분과를 진행해 바이오 경제 시대의 든든한 뒷받침이 되겠다"고 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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