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철 기자 ] 집을 처분해도 주택담보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하는 주택을 흔히 ‘깡통주택’이라고 한다. 집주인이 돌려줘야 할 돈이 전세금일 경우 ‘깡통전세’라고 불리기도 한다.
깡통주택·깡통전세는 주택시장 침체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주택 시장이 조정받을 때 어김없이 등장했다. 서민들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기 어려워 집값이나 전셋값 폭등 때 못지않게 큰 고통을 겪었다. 그래서 ‘서민 주거안정’을 내세우는 정책 당국자들이 경계하는 것이 깡통주택·깡통전세 확산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최근 가계부채 관리 점검회의에서 깡통전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선 것도 그만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위기를 경고하는 정책 당국자의 발언이 위기를 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최 위원장이 이를 언급할 정도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은행권 전세대출은 지난해 92조3000억원으로 전년(66조6000억원)보다 38.6%나 급증했다. 깡통전세가 늘어나면 그 여파는 부동산 시장을 넘어 경제 전반에 미친다.
수도권도 '깡통전세' 주의보
지방은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우려할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경남 거제·창원, 울산, 경북 구미·경주, 전북 군산 등 제조업 거점 지역은 경기침체로 집값 급락과 전셋값 급락이 겹치면서 깡통주택·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 지역 산업단지 인근 아파트의 경우 2년 전보다 매매가와 전셋값이 1억원 이상 떨어진 곳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도 예외가 아니다. 평택, 안산, 안성, 화성, 시흥 등 입주 물량이 집중되는 곳에선 3~4개월 새 집값이 2000만~3000만원 하락했다. 올해 9000가구에 이어 내년에 1만6000가구가 쏟아지는 평택에서는 10년 이상 된 아파트를 중심으로 2년 전보다 전셋값이 최고 8000만원 떨어지는 등 하락세가 완연하다.
문제는 깡통주택·깡통전세의 원인과 양상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 충격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초유의 외환위기로 집값과 전셋값이 단기에 50% 이상 급락한 1997년을 제외하고는 지금처럼 걱정스러운 상황도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이전의 깡통주택·깡통전세 사태 때는 대부분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 금리가 낮고 대출도 수월했다. 정부 역시 전매제한 완화, 총부채상환비율(DTI) 상향 등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었다.
지역 '맞춤형' 선제적 대응 절실
지금은 그때보다 경제 여건이 더 나빠졌고 주택 정책도 규제 일변도다. 보유세 폭탄, 금리 인상, 대출 조이기, 경기 침체 등이 전방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입주 물량도 크게 늘었다. 올해 전국에서 입주하는 아파트는 약 38만 가구로, 평년보다 30% 정도 많다. 내리막 국면에 있는 주택시장의 하강을 재촉하는 정책과 변수만이 가득할 뿐이다. 깡통주택·깡통전세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정부가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수도권과 지방의 상황이 다르고, 지방도 광역시와 여타 지역의 사정이 같지 않다. 정부가 깡통주택·깡통전세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더 늦기 전에 서울·수도권에 초점이 맞춰진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지역 상황에 맞게 ‘맞춤형’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시장이 침체에 빠진 뒤에는 각종 보완책을 쏟아내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에서 얻은 교훈이다. 정부가 ‘집값 잡기’에만 집착하지 말고 ‘깡통주택’에 대한 대응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할 때다.
synerg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