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는 핀테크, 블록체인은 차세대 DB 기술"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가 위험한 상황입니다. 토큰 때문에 거래소를 오픈하는 구조랄까요. 폐쇄적이고 단순화된 비즈니스로 움직이고 있죠. 새로운 모델이 필요합니다.”
1년 전 최고점 대비 80~90% 가격이 빠진 암호화폐 혹한기에도 거래소는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업계는 현재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를 200곳 이상으로 추산한다. 제도권 밖이라 특별한 준수절차가 없어 손쉽게 설립할 수 있어서다. 일부는 아예 편법으로 수익을 낼 의도를 갖고 거래소를 차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거래소를 오픈한다는 김태원 글로스퍼 대표(사진)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래소를 선보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28일 글로스퍼 본사에서 한경닷컴과 인터뷰한 김 대표의 구상은 ‘하이브리드형 거래소’다. 꼭 암호화폐 전용 거래소일 필요는 없다는 게 핵심. 기존 금융시장에서도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법정화폐와 암호화폐가 함께 돌아가는 모델로 생각하면 쉽다.
‘글로벌’과 ‘트랜스퍼’의 합성어로 이름을 지은 글로스퍼는 다양한 블록체인 분야 개발사업을 펼쳐온 기업이다. 메인넷 개발, 암호화폐 발행을 비롯해 노원구 지역화폐 등 공공 프로젝트도 여럿 수주해 퍼블릭·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보유했다. 시스템통합(SI) 해외송금 상용화회사 등 여러 계열사도 갖추고 있다. 거래소 분야까지 진출하려는 이유는 뭘까.
“사실 글로스퍼는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 경험과 인력을 갖고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접목해 안정적으로 산업을 육성하려면 거래소 없이는 어렵다고 판단했었죠. 그동안에는 우선 블록체인 기술력에 집중했어요. 이젠 거래소 모델도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암호화폐 거래소는 한 마디로 투자자 신규유입 없이 ‘폭탄 돌리기’ 하는 상황이거든요. 대안이 뭘까요? 기존 금융시장 투자자들도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 대표는 지금 단계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글로스퍼가 블록체인 분야를 전담하고 금융사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암호화폐와 기존 금융시장을 아우르는 형태의 거래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법정화폐와 암호화폐를 함께 다루는 거래소가 전무했던 건 아니다. 2011년 설립된 유럽의 암호화폐 거래소 페이미엄이 비트코인과 유로화를 동시에 취급한 적 있다. 단 의도가 있었다기보단 초창기라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이 거의 없어 불가피했던 방식이었다.
글로스퍼의 하이브리드형 거래소는 전제가 다르다. 암호화폐 전용 거래소 개념이 정립된 상황에서 역으로 전통 금융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얘기다. 자연히 ‘기존 금융시장 수요를 끌어들일 만한 유인(인센티브)은 있느냐’라는 질문과 맞닥뜨린다.
“철저히 이용자 관점에서 바라보려 해요. 예를 들어 현행 금융시장의 투자상품들은 중도 해지가 어렵죠. 이런 부분에 증권형 토큰 공개(STO)나 토큰화(토크나이징) 모델 같은 암호화폐 요소를 접목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겁니다. 이를테면 해지 대신 소유권 이전으로 투자의 방식을 바꿀 수 있겠지요. 현실적 수요가 있는 분야부터 적용해나갈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블록체인 산업이 아닌 핀테크(금융기술) 산업”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가 거래소에서 유통될 뿐, 업의 본질은 금융이란 얘기다. 그같이 접근하면 기존 금융시장과의 융합 시도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코인이 많다고 하지만 2~3년 내 새 코인 2000~3000개 정도가 더 나오도록 역할을 하는 게 목표예요. 코인을 투기수단이 아닌 일종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정착시키고 싶어요. 예컨대 대학 등록금이 필요하다면 기존에는 대출을 받았겠죠? 앞으로는 코인을 발행해 자금을 모으는 것도 가능해질 겁니다. 정말 새롭고 다양한 모델의 코인이 나올 수 있어요.”
대신 ‘코인 청산’ 기능을 도입, 청산이 이뤄지면 현금으로 환불이 가능케 해 투자 손실을 막는다. 이때 코인 청산은 코인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다. 특정한 전략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대학 등록금 조달을 위해 코인을 발행하는 사례를 가정하면, 졸업으로 등록금이 더 이상 필요 없어져 해당 금액을 돌려줄 수 있을 때 청산하는 식이다.
청산 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합의’다. 김 대표는 “코인 청산 절차에는 스마트 콘트랙트(계약) 기능과 투자자 다수의 동의가 필수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활발한 ‘인&아웃’ 시스템이 갖춰지면 각양각색 비즈니스 모델의 코인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암호화폐 거래소 자체의 신뢰 문제나 실수, 사고 등으로 도리어 코인 가치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죠.”
암호화폐란 개념 자체를 사람들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 법정화폐가 그렇듯 자연스럽게 교환가치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김 대표가 새 거래소를 준비하며 방점을 찍은 대목이다.
“저희가 만들 거래소는 암호화폐에 특별한 가치를 두진 않아요. 엄밀히 말하면 시장에서 투자가치가 있는 상품에 대한 ‘표현’을 암호화폐로 할 뿐이죠. 기존 시장 투자자들도 소유권을 쪼개 토크나이징하는 투자방식이라면 무조건 암호화폐를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이를테면 현행 시장에선 대부분 꺼리는 고위험 상품군에 대한 니즈(소구력)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게 핵심입니다. 잘 정착하면 제3의 자본시장 조달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찌감치 업계에 발을 들여 사업 활동을 해온 지난 5~6년간 블록체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는 그는 블록체인에 대해서도 ‘차세대 데이터베이스(DB)’ 기술이라고 간명하게 정의 내렸다.
김 대표는 “클라우드 초창기에 ‘우리 데이터를 어떻게 외부에 저장하느냐’며 반신반의했는데 지금은 클라우드에 올린다. 이젠 ‘클라우드에 보관된 DB를 어떻게 믿느냐’고 묻는데 거기에 대한 해답이 블록체인이다”라고 부연했다.
“블록체인 자체만으로 세상을 확 바꾼다고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기술적으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중요한데 그 데이터에 신뢰를 부여하는 게 블록체인입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그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비유하면 블록체인은 인터넷 같은 거죠.”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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