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낙훈 기자 ] “저는 늙고 힘없는 여성 기업인입니다. 폐업하면 어디 가서 취업할 수도 없고 폐지를 주울 힘도 없는 노약자입니다. 저는 올해가 가장 혹독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최대 목표입니다. 말씀드리기 창피하지만 공장도 임차공장이고 집도 전셋집에서 삽니다. 단돈 10만원이라도 이윤이 남으면 기업을 계속 운영하겠지만 쉽지 않네요.”
중부권에서 제조업을 하는 여사장으로부터 최근 받은 이메일이다. 60대 후반인 이분은 창업자인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 수년 전 기업 경영을 떠맡았다. 집까지 팔면서 공장을 꾸려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실토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도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원가를 줄여 이익이 나면 월 몇십만원이라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어가는 뿌리기업들
하지만 경기침체기에 최저임금마저 오르면서 이런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저임금과 관련된 중소기업인들의 하소연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1월 근로에 대한 임금을 2월 초 지급하는 기업인들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특히 영세기업과 뿌리기업 등 임금 인상과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중소기업이 44.1%에 이른다.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절반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상승은 당연히 부담이 된다. 최저임금은 인건비는 물론 원재료비와 물류비, 공장 부근 현장식당의 밥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경기침체와 중국산 저가 공세까지 겹치면서 상당수 중소기업은 삼각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서병문 주물조합이사장이 주물업체는 전체의 약 80%가 적자에 허덕일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힐 정도다. 도금 열처리 금형 등 여타 뿌리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정부출연硏은 왜 존재하나
일부 기업은 해외로의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베트남 등지로 빠져나가려고 현지 공장 터를 물색하는 중소기업인이 줄을 잇고 있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근로자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들을 일터에서 내쫓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영세기업의 사장들은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를 놓고 밤잠을 설친다. 일본에선 헤이세이 불황 기간 중 전체 중소기업의 약 30%가 문을 닫았다. 중소제조업체 밀집지역인 도쿄 오타구의 중소기업은 이 기간 동안 7000개에서 4000개 안팎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도 닥칠까 걱정스럽다.
양극화를 줄이면서 중소기업의 연쇄 도산을 막을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는 없는 것일까. 어떤 정책의 수립이나 시행 과정에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면 이를 면밀히 검토하고 대책도 당연히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존재하고 이른바 싱크탱크인 정부출연연구소가 있는 것 아닌가. 박사급 연구원이 즐비한 출연연구소에서 그런 정책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허구한 날 정부 입맛에만 맞춘 보고서를 남발한다면 차라리 그런 연구소들을 없애고 그 예산으로 영세기업이나 뿌리기업을 지원하는 게 낫지 않은가.
이메일을 보내온 여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신앙인이라 절대로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가끔 중소기업 사장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라고. 올해는 이 여사장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져주는 해가 될 수 있을까.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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