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신(新)누들로드

입력 2019-02-09 00:04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스위스 알프스의 융프라우 정상 휴게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한국 컵라면이다. 신라면 한 개에 7.9프랑(약 9000원), 뜨거운 물값을 따로 받는데도 불티나게 팔린다. 추위에 떨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맛본 관광객들은 “원더풀!”을 연발한다.

인스턴트 라면이 인류의 식탁에 오른 것은 불과 60여 년 전이다.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1958년에 닭뼈 육수맛을 낸 ‘치킨라멘’을 개발했다. 그는 중·일전쟁 때 중국군이 건면(乾麵)을 튀겨서 휴대하고 다니던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 때 일본에 전파된 중국 요리 납면(拉麵·라미엔)이 라면의 원조라는 설도 있다.

국수를 포함한 면(麵·noodle)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밀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면 요리가 탄생했다. 조리하기 쉽고 먹기 편한 면은 곧 ‘누들로드’를 타고 아시아와 유럽 각지로 퍼졌다. 인스턴트 라면도 이런 과정을 따라 중국, 일본, 한국 등으로 확산됐다.

라면이 한국에 등장한 시기는 1963년이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늦었지만 감칠맛과 매운맛의 조화에 힘입어 국민적 대용식으로 자리 잡았다. 맛도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져 이제는 130여 개국에 수출되는 효자 상품이 됐다.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4억달러를 넘어섰다. 해외 법인 생산량까지 합치면 나라 밖 매출이 9억달러(약 1조원)에 이른다.

한국 라면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고, 다음은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다. 국가별로 인기를 끄는 브랜드는 다양하다. 중국과 동남아 시장은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휩쓸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농심 신라면이 독보적이다. 월마트의 4000여 점포뿐만 아니라 아마존에서도 팔린다. 러시아에선 팔도의 도시락면이 시장 점유율 60%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농심이 튀기지 않은 면을 이용한 ‘신라면 건면’을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라면 시장이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 유행에 맞춰 저칼로리·저나트륨 등 프리미엄 제품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의 영향으로 라면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는 만큼 수출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가장 늦게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으면서도 가장 빨리 성장해 원조국에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이젠 ‘신(新)누들로드’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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