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세기' 이겨낸 폴란드 3대 가족사

입력 2019-02-10 17:04  

올가 토카르축 장편소설 '태고의 시간들' 국내 출간


[ 은정진 기자 ] 올가 토카르축 장편소설 중 국내에 처음 번역·출간된 《태고의 시간들》(은행나무)은 그를 폴란드 국민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책이다. 1996년 출간돼 폴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 중 ‘독자들이 뽑은 최고 작품’으로 선정됐다. 그는 2007년 내놓은 장편소설 《방랑자들》 영어판인 《Flights》로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세계 문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태고의 시간들》은 1910년부터 199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폴란드 키엘체 인근의 가상 마을 ‘태고’에서 삼대에 걸쳐 살고 있는 니에비에스키 가족들 이야기다. 태고는 폴란드어로 ‘아주 오래된 원시의 시간’을 뜻한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있는, 현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중첩된 공간이자 시공을 초월한 ‘열린공간’이다.

책은 ‘~의 시간’이라는 소제목으로 된 조각글 84편으로 구성됐다. 그 주체는 등장인물인 니에비에스키 가족과 이웃들은 물론 동식물, 신(神), 게임, 죽은 자, 사물, 심지어 버섯균까지 다양하다. 장마다 이들의 독립적 이야기가 2~3페이지씩 구성돼 있어 짧은 산문을 보듯 읽기 수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설에서 보이는 연대기적 흐름 대신 각 에피소드를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넣어 서로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뒤얽히도록 구성했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주체’로서 각자 개별적인 삶의 방식과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허구와 현실을 적절하게 중첩한 점은 소설 속 큰 특징 중 하나다. 20세기 100년간 폴란드 영토에서 실제 일어났던 야만적인 사건들을 촘촘히 배치했다.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로부터 점령당했던 삼국 분할기(1795~1918년) 막바지인 20세기 초를 시작으로 1차 세계대전(1914~1918년)과 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의 참상을 담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해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거나 무참하게 학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후 사유재산 국유화 및 엄혹한 정부 감시를 받던 사회주의 냉전 시대(1949~1989년)와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과 체제전환(1989년)까지 냉혹했던 현실을 반영했다.

구한말부터 해방 직전까지를 그려낸 《아리랑》과 분단 역사를 담은 《태백산맥》, 경제발전 역사를 풀어낸 《한강》 등 지난 100년의 한국사를 대하소설로 엮어낸 조정래 작가 장편소설들을 한 권으로 집약시킨 것을 보는 것 같다.

유독 여성들 이야기를 작품에 많이 담아낸 저자는 이번 소설에서도 탄생부터 성장, 출산, 늙음,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역사엔 기록되지 않았던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성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는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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