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희망은 사납다 2 - 이수정(1974~ )

입력 2019-02-10 18:47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희망은 사납다 2

내가 기르는 희망은
따스한 혀와 이빨
늘, 입맛을 다신다

희망이 자라면
나를 잡아먹을 수도 있으리라

희망은 나를 짖어 부르고
물어뜯는다
희망은 요구 사항이 많다
희망은 사납다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문학동네) 中

저 남쪽의 봄빛이 희망이라면, 희망은 아직 사납다. 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희망도 쉽게 오지 않는다. 봄을 찢고 나온 매화, 따스한 혀와 이빨, 입맛을 다시는 짐승이라면, 그 짐승은 나를 잡아먹을 수도 있겠다. 나의 나태를 꾸짖는 저 매화, 내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순한 눈망울 같은 이름으로 사나운 맹수처럼 달려드는 희망을 상상한다. 잠이 쏟아지는데, 매화나무 사납게 나를 노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망을 베개처럼 끌어안고 잠들기 좋은 겨울 햇살이여!

이소연 < 시인(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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