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규제 혁파는 어렵고도 힘든 과제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변한 게 거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장 손봐야 할 법률만도 수백 건에 이르고, 기득권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새 규제 면제제도를 도입해도 효과가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혁신 마중물’로 기대되는 규제 샌드박스만 해도 제대로 효과가 발휘되려면 개선해야 할 게 적지 않다. 사업자가 신청한 특정 신산업에만 적용되는 데다 규제 면제기간(2년+2년)도 제한받는 ‘임시 조치’에 불과해서다. 기업 입장에서 2년 이후가 불확실한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는 마땅치 않다.
규제 혁파 속도도 관건이다. 영국이 2014년 핀테크(금융+정보통신기술) 분야에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이후 일본 등 10여 개 국가가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자율주행차 등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뒤늦게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고도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어 건별(件別)로 허가하는 방식이어서 ‘속도전’에서 경쟁국들을 따라잡기 힘들다.
게다가 핵심 신산업은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다. 원격의료, 카풀 서비스 등 웬만한 국가들이 다 하는 신산업이 이익집단들에 가로막혀 있다.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에도 혁신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이다.
더 늦기 전에 실리콘밸리와 선전을 각각 앞세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규제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들 국가는 신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일단 허용, 규제는 예외’ 원칙을 따른다. 특별한 문제가 생길 때만 규제를 검토한다. 우리나라도 ‘선(先)허용, 후(後)규제’인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모든 산업과 서비스에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규제 혁파의 발상부터 전환해 산업 생태계에 혁신과 창의가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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