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구독자 수가 66만명에 달하는 '유튜브 스타' 박막례 씨(73)는 맥도날드의 무인계산대(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최근 올린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편에서 박 씨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다"고 자조한다. 겨우 주문을 마쳤지만 원하던 제품이 아니자 박 씨는 "먹고 싶어도 못 먹어"라고 토로한다.
# KB국민은행 노조가 19년 만의 총파업을 단행한 지난달 8일. 다수의 은행원들이 영업점을 비워 불편을 겪은 고객은 인터넷·모바일뱅킹에 익숙지 않아 은행 창구를 이용해야 하는 노년층 고객이었다. 명동에서 장사를 하는 김모 씨(64세)는 "매상 입금 때문에 지점을 찾았다"며 "걱정한 만큼 오래는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시간이 걸렸다"며 가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노년층이 디지털화 바람 속 소외되고 있다. 휴대폰과 컴퓨터 등 정보기기에 능숙하지 않은 노년 인구는 생활 전반의 디지털화·무인화로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고령사회' 진입한 한국…노년층 인구 '디지털푸어' 현상 나타나
기대수명이 연장되고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한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고령인구의 디지털 기술 기반 온·오프라인 서비스의 접근도는 떨어져 청년층과 정보 격차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 인구의 14% 이상이 고령인구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통계청의 '2017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14.2%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UN 등 국제기구는 고령인구 비중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화 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2000년 처음으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뒤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로 바뀔 것으로 추계된다.
그러나 만 55세 이상의 장·노년층은 IT기기·인터넷 사용능력 등 '디지털 정보화수준'이 국민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수준은 국민 평균의 58.3%에 불과했다. 교통정보 및 지도, 제품 구매 및 예약, 금융거래, 행정서비스 등 이용 비율을 뜻하는 '생활 서비스 이용률'은 59.9% 수준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7년 발간한 '디지털경제전망(Digital Economy Outlook) 한국 특별판'에서도 연령에 따른 인터넷 사용 격차가 큰 것으로 집계됐다. 16~24세 청년층 인터넷이용률은 100%에 육박했지만 55~74세 중장년 및 노년층의 경우 64.3%로 뚝 떨어졌다.
◆생활 속 무인화·디지털화 확산…전문가 "사회적 배려·정책 필요"
그러나 생활 속에서는 고령층에 허들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 발전과 임금인상으로 각 산업권에서 디지털화·무인화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서 무인계산대(키오스크)가 빠르게 확산된 곳은 롯데리아·맥도날드·KFC 등 대형 패스트푸드 업체다. 국내에서 매장 수가 가장 많은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롯데리아의 경우 키오스크 설치 매장이 3년 사이에 10배로 급증했다. 2015년 80군데에 불과했지만 2016년 437곳으로 늘었고 지난해 말에는 두 배인 826곳으로 늘어났다. 전체 매장 1350곳의 60%에 키오스크가 설치된 셈이다.
200여 개 매장이 있는 KFC는 스키장·야구장 등 특수매장을 제외한 전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박막례 씨가 키오스크 구매를 시도한 맥도날드 역시 키오스크 설치 매장 비율이 60%대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수도권 지역 매장을 중심으로 키오스크 설치 매장이 빠르게 늘었다"며 "키오스크를 통한 전체 매출의 절반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대중교통 역시 디지털화 확산과 함께 노년층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는 영역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최근 구정(설) 기차표 예매 과정에서 역 현장 예매비율은 7%(6만석)에 그쳤다.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93%(77만석)에 달했다. 휴대폰·컴퓨터를 통한 온라인 예매 이용방법을 모르거나 상대적으로 손이 느린 노년층은 좌석을 잡기 한층 어려워졌다. 장거리 이동 시 좌석을 필요로 하는 노약자들이 불리해진 것이다.
금융 역시 디지털화와 함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은행들이 디지털 사업부 강화에 나서 우대 혜택을 온라인 상품에 몰아주면서 노년층은 금융비용을 더 내고 이자를 덜 받는 구도가 조성됐다.
주로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노년층은 금융 거래를 할 때 더 많은 비용을 물어야 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5개 은행에서 창구를 통해 100만원을 타행으로 송금할 경우 최고 2000원, 평균 1969원의 수수료를 내야 했다. 그러나 모바일로 송금하면 수수료는 500원 수준에 그쳤다. 인터넷 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이체 수수료가 없었다. 또한 주류 시중은행들이 모바일 전용 예·적금 상품에 대해서는 우대금리를 얹어주는 만큼 관련 상품을 이용하지 못하는 노년층은 기회를 잃고 있는 셈이다.
은행이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으로 영업점 수를 줄이면서 노년층의 접근성도 떨어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점포 수는 2014년 말 5182개에서 2017년 말 4733개로 449개 감소했다. 주요 금융그룹이 올해도 디지털화를 기치로 걸고 나선 만큼 이 같은 현상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생활기술'의 관점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교육과 관련 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적·사회적 여건 차이에 의해 고령자의 디지털 정보 서비스 사용이 제한되면서 디지털 정보 격차 현상인 '디지털 리치 vs 디지털 푸어'가 조성됐다"며 "국민의 서비스 접근성과 삶의 질 보장 차원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전 연구원은 "디지털 취약계층 친화형 디지털 서비스 개발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최은영 이화여자대학교 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은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에 고령층과 젊은층의 세대간 격차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제도나 시스템에서 노인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OECD 노인빈곤율 1위로 불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정부와 사회가 협력하고, 젊은층들이 노인들을 바라보는 편견이나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완화한다면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