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VR' 되살린 몰입기술…1차 세계대전 현장까지 완벽 재현

입력 2019-02-15 16:48  

과학 이야기

초고화질 영상, 5G망으로 전송
인터페이스·컨트롤러·헤드셋 등 VR하드웨어 업그레이드도 해당

MS '홀로렌즈'는 몰입기술 선두…스마트폰·PC에 연결 않고 이용
포드·셰브론·하니웰 등 현장 투입
제품 디자인 1주일→수시간으로, 전 세계 공장 관리에도 쓰여



[ 윤희은 기자 ] 지난 13일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의 ‘뉴먼 도서관’에서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버지니아공대 주도로 열린 ‘보쿠아(Vauquois) 체험전’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가 접전을 펼쳤던 프랑스 보쿠아 터널을 그대로 재현했다. 관람객들은 전용 고글과 헤드셋을 쓴 채 실제 전쟁 현장을 구현한 시뮬레이션을 체험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을 실제와 거의 근접한 수준으로 재창조하는 ‘몰입기술(immersive technolog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장감이 떨어져 외면받았던 VR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는 이유다.


가상현실 속에서도 보고 만진다

국내에 VR 게임방이 들어온 것은 2017년이다. 도입 후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반쪽 VR’이라는 불만이 사그러지지 않고 있다. 영상 화질이 현저하게 떨어져서다. VR 게임을 실감 나게 즐기려면 가로와 세로 해상도가 각각 7680, 4320인 8K 이상인 고화질 영상이 필요하다. 시야 전체를 뒤덮는 화면인 만큼 TV나 모니터보다 해상도가 높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수준의 VR 콘텐츠는 극히 드물다. 픽셀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몰입기술은 이런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통칭한다. 고효율 비디오 코덱(high efficiency video codec) 전송규격에 맞춘 8K 이상의 고화질 영상을 5세대(5G) 이동통신 속도를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게 몰입기술의 첫걸음이다. 초고화질 영상을 5G망으로 빠르게 전송하는 것만으로도 몰입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인터페이스, 컨트롤러, 헤드셋 등의 VR 관련 하드웨어들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몰입기술과 연관이 있다. 헤드셋 무게를 줄이고 인터페이스를 정교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사용자가 특수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도록 하는 VR 기업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초음파 원격 촉각재현장치(햅틱) 기술과 광신호 기반의 촉감 생성기술을 통해 ‘만지는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초음파나 레이저를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게 핵심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온라인 쇼핑을 할 때도 제품을 미리 만져볼 수 있다. 판매자가 촉감 신호를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전송하면 가정에 구비된 촉감 재현 장치가 이를 구현한다. 이 기술은 원격수술 분야 등에서 요긴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MS, 3D 기술 통한 디자인·원격관리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이미 몰입기술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의 홀로렌즈(사진)가 선두주자로 꼽힌다. 홀로렌즈는 스마트폰이나 PC에 연결하지 않고 쓸 수 있는 홀로그래픽 컴퓨터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이 장비가 처음 나온 2016년 10월 “궁극의 컴퓨터”라는 표현을 썼다.

홀로렌즈는 세계 곳곳의 산업 현장에서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미국의 포드자동차는 홀로렌즈를 이용해 자동차 디자인을 3D 홀로그램 방식으로 설계하고 있다. 찰흙 모형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면 1주일씩 걸렸던 작업을 홀로렌즈로 몇 시간에 해치운다. 미국 셰브런은 홀로렌즈로 세계 각국의 공사 현장을 관리하고 있다. 하니웰은 홀로렌즈를 기술자 교육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만지는 몰입기술 장비’들도 하루가 다르게 성능이 개선되고 있다. 2017년 1월 일본의 익시는 장갑 형태의 햅틱 장비 ‘엑소스’를 선보였다. 물건을 만질 때 근육에서 일어나는 긴장감을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4월 미국 디즈니리서치도 ‘포스재킷’이라는 이름의 햅틱 장치를 내놓았다. VR 게임 속 타격감을 그대로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가벼운 접촉에서부터 충돌까지 섬세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몰입기술을 마케팅에 적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월마트는 드림웍스와 손잡고 이달부터 인기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 VR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전용 모션 의자에 앉아 헤드셋과 고글을 쓴 상태에서 5분간 드래곤 길들이기 캐릭터가 등장하는 VR 시뮬레이션을 체험한다. 월마트 주차장에 설치된 장비에서 체험을 마치면 마트 내 드림웍스 코너로 고객들을 안내한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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