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목의 선전狂시대]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의 '피말리기 협상술'

입력 2019-02-16 12:44   수정 2019-02-1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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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도 쩔쩔매게 만들어
협상 끝나고도 이행 조건 내걸어 상대 압박
해외 투자, 샤프 인수 등에서 이득 챙겨



부동산 재벌 출신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협상 능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도 '협상의 기술'로 협상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 과정에서 진땀을 흘린 상대가 있다. 대만 최대 기업으로 애플 아이폰의 조립, 부품공급업체로 잘 알려진 폭스콘의 궈타이밍 회장이다.



지난 2일 열린 폭스콘 종무식에서 그는 "어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친분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콘 종무식을 하루 앞두고 급히 궈타이밍과 통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폭스콘이 100억달러(11조2000억원)을 들여 미국 위스콘신주에 짓는 디스플레이 공장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 외국 기업으로서는 최대 규모의 투자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있은 기공식에 참석해 궈타이밍과 함께 삽을 뜨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폭스콘이 갑자기 위스콘신 투자 계획을 "재고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글로벌 투자환경이 변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폭스콘 공장을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부르며 자신의 치적을 자랑했던 트럼프로서는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트럼프는 이틀 뒤 부랴부랴 궈타이밍과 통화를 했고, 궈타이밍은 다음날 종무식에서 "예정대로 위스콘신 공장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궈타이밍이 위스콘신 공장 투자를 지속하는 조건으로 트럼프로부터 지원을 얻어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폭스콘은 이미 위스콘신주에서 3조원에 이르는 각종 보조금 지급 혜택을 받기로 한 바 있다.

보통 기업이 투자 발표를 하거나, 상대와 계약을 맺으면 협상이 끝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궈타이밍은 예외다. 협상문서에 서명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상대와 악수를 한 이후에도 계속 상대를 압박한다.

상대의 피를 말리는 궈타이밍의 협상 스타일이다. 이같은 그의 스타일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 2016년 샤프 인수전이었다.

2016년 2월 폭스콘은 샤프의 채권단에 7000억엔(약7조7000억원)을 인수금액으로 제시했다. 경쟁자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당연히 폭스콘은 샤프의 인수자로 결정됐다.



결정이 끝나자 폭스콘의 압박이 시작됐다. 100여명의 직원이 샤프 내부를 샅샅이 뒤져 문제점을 걸러낸 것이다. 궈타이밍은 "실사 결과 가까운 미래에 채무로 바뀔 수 있는 많은 문제점이 발견됐다. 폭스콘이 속았다"고 말했다.

이를 빌미로 폭스콘의 인수가 '후려치기'가 시작됐다. 샤프와 채권단의 입장에서 폭스콘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인 것을 이용해 가격을 계속 낮췄다.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샤프의 대출 상환이 불가능해져 채권단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결국 채권단은 샤프 매각 가격을 3조9000억엔까지 낮췄다. 처음 폭스콘이 제시한 인수가의 55% 밖에 되지 않는 값이다. 일본 언론들은 "궈타이밍에 농락당했다"며 탄식했다.

이처럼 계약이나 약속은 궈타이밍에게 상대를 압박하는 수단이다. 일단 계약을 한 뒤에 추가로 자신의 조건을 제시하며 그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약속을 믿고 다른 대안을 준비하지 않는 상대는 이후부터 궈타이밍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

살펴보면 많은 나라들이 궈타이밍의 이같은 협상 전략에 당했다.

2007년 베트남, 2009년 브라질, 2012년 인도네시아 등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후 추가 협상에서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계획을 백지화하거나 일부만 투자했다.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 떠오르는 인도도 마찬가지다. 폭스콘은 2015년부터 인도에 대규모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2017년 7월 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이후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2018년 12월 애플 등을 통해 관련 내용이 나오면서 구체화되고 있다.

물론 폭스콘의 기존 생산기지가 있는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있어 공장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격화되는 미중 무역전쟁도 이유다.

하지만 궈타이밍이 인도에 실제로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어떤 지원을 더 이끌어낼지는 여전히 관심이다.

흔히 대만은 중국과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섞어놓은 나라로 이야기된다. 폭스콘을 비롯한 대만 기업들과 경쟁해 본 한국 비즈니스맨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협상 상대로서 대만인은 일본인의 꼼꼼함과 중국인의 집요함을 모두 갖췄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궈타이밍의 협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선전= 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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