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中 내수경제 현대화서 새 기회 찾아야

입력 2019-02-17 17:40  

"수출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된 中
시장·기업의 현대화 수요에 주목
한·중 동반자 관계 발전시켜야"

오승렬 <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외교통상학 >



미·중 간 무역 갈등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해 12월 1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90일의 휴전 기간을 정해 고위 당국자들이 양국을 오가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나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협상이 결렬되면 미국은 내달 2일부터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올린다는 것이다. 중국은 신에너지 차량에 대한 보조금 중단, 대두(콩) 및 액화천연가스(LNG)·원유 등 미국산 농산물과 에너지 수입 확대, 6년에 걸친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반도체 수입을 당근으로 내밀었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중국 시장 진입 장벽과 지식재산권 절취, 외자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양보안을 내놓기 전에는 물러설 수 없다는 방침이다. 중국이 좀 더 ‘성의’를 보여 미·중 갈등이 봉합될 가능성은 크지만, 자국 경제의 취약성으로 인해 이번에 크게 낭패를 본 중국의 정책 선회는 불가피하다.

세계 경제 불안과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이 미·중 무역 갈등 때문인 것으로 보는 건 착각이다.

오히려 세계 경제의 구조 변화가 미·중 갈등을 초래했다. 1995년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위한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및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정보기술(IT) 경제 붐과 외자 유입에 힘입어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대와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의존하던 세계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이르자 제조업 기지 중국도 경제 활력을 잃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보호주의의 칼을 빼들었다. 세계화된 경제구조 속에서 보호주의가 상충하는 ‘포스트 WTO’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미·중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중국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과거 정책에 안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분간 중국은 수출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겠지만 더 이상 수출을 성장 엔진으로 삼기는 어렵다. ‘중국의 꿈(中國夢)’으로 포장했던 ‘일대일로(一帶一路)’도 중국의 일방적인 방식에 반감을 가진 국가가 증가하면서 경제적 효과가 불확실해졌다. 그동안 정부 주도의 인프라 건설과 외자 유입, 인구의 7분의 1에 불과한 중산층의 제한된 구매력에 의존한 성장 방식은 한계에 직면했다.

결국 중국은 14억 인구의 소비 수요가 성장을 추동하는 내수 시장 발전에 명운을 걸 수밖에 없다. 공산당 및 각급 지방정부의 보호와 간섭에 종속됐던 시장이나 기업의 혁신과 현대화가 시급하다. 낙후된 서비스산업의 발전, 농촌 현대화, 토지 소유제도 개혁과 도시화 등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경기 둔화와 가파른 인건비 상승, 수출 환경 악화, 각급 정부의 간섭과 정책 불확실성,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괴로웠던 중국 시장에 지쳤다. 한국 기업의 제3국 수출을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중국은 매력을 잃고 있다. 많은 한국 기업이 ‘한물간’ 중국을 대체할 지역을 찾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이 필요로 하는 산업 고도화, 시장과 기업의 현대화, 도시화, 기술 개발 경험에서 ‘가성비’ 높은 노하우를 축적했다. 중국의 변신은 한국이 윈윈할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로서 다가갈 기회다.

보호주의 격랑 속에서도 양국 경제는 협력을 통해 도약할 수 있다. 중국의 변신과 기술 진화가 한국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다. 한국 경제가 영원히 휴대폰 수출에 의존할 수 없고, 중국도 언제까지나 외자 기업의 하청 기지 역할에 머물 수 없다. 14억 인구의 중국 대륙이 진정한 현대화의 길에 들어선다면,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담보할 협력 파트너와 시장을 얻는 셈이다. 중국도 미·중의 양강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국 등 역내 경제와의 협력 심화를 통해 안정적 경제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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