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유경제-원격의료, 사업자 아닌 소비자에게 물어보라

입력 2019-02-17 17:4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유경제와 원격의료를 한국에서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도 ‘공수표’ 논란을 빚었다. 지난 15일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혁신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공유경제와 원격의료 등이 택시기사와 의사 등의 반발로 가로막힌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묻는 말에 답변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홍 부총리는 “선진국에선 보편적인 서비스를 우리만 못할 까닭이 없다”면서도 “이해관계자들이 윈윈하는 상생 방안을 마련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고 말해 조속한 규제 혁파를 고대한 기업인들을 또다시 허탈하게 했다.

차량공유 서비스 ‘쏘카’와 ‘타다’를 운영하는 이재웅 전 기재부 혁신성장본부 공동본부장이 “이해관계자 대타협이 우선이라는 말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라고 일갈한 대로다. 인터넷포털 ‘다음’ 창업자인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장 중요한 수천만 명의 택시 이용자가 빠졌는데 카카오, 택시단체, 국회의원이 모인 기구를 사회적 대타협 기구라고 명명한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내려진) 결론을 어느 국민이 수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각종 갈등 조정의 장치로 동원하고 있는 ‘사회적 대타협’의 핵심적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이름 아래 이해관계자들 간에 평행선을 그리게 하거나 ‘목소리 큰 쪽’의 손을 슬그머니 들어줘 도리어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더 키운 사례는 신(新)산업 분야만이 아니다. 일자리 대재앙 고착화로 귀결되고 있는 최저임금 졸속 인상과 시대 조류(潮流)를 거스르는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을 보완하는 작업 등이 답보 상태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공공기관 노조의 억지 파업을 견제할 대체근로자 투입 등 기업 측 대응 수단과 4050 중장년 세대의 일자리 숨통을 터줄 파견근로 등을 허용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홍 부총리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 과제 역시 “선진국에서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 못할 게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다른 나라들이 다 허용하거나, 최소한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있게끔 유연하게 적용하는 조치들을 한국에서만 ‘약자 보호’라는 정치구호 아래 호도하는 규제를 강행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시장억압적 규제가 하도 많아 한국이 ‘갈라파고스’에 비유되는 지경이다. 업역과 국경 구분이 사라진 무한경쟁 시대에서 한 줌의 기득권 철밥통을 지켜주기 위해 성장과 고용의 원천인 기업을 밖으로 내몰고, 약자를 더 곤궁으로 몰아넣는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핵심 관문은 사업자들 간의 갈등 조정이다. 정상국가라면 노조 등 일부 ‘힘센 세력’이 아니라 국민 전체 편익과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이재웅 대표 말처럼 “정부 역할은 국민 편익을 증진하는 혁신을 북돋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주요 국가가 기존 사업자들 반발을 무릅쓰고 신산업을 허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노조 등 일부 지지세력 눈치를 보느라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해당사자들 간 ‘상생 합의’만 종용할 게 아니라 무엇이 국민 편익에 합당한지를 따져 기득권 장벽을 허무는 등 적극적 조정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 그게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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