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가격 하락으로
집주인이 집 팔아도
전세금조차 못 돌려줘
전셋값도 14년만에 하락
세입자가 보증금 못받아
이주 못하는 ‘역전세난’도
[ 신동열 기자 ] 가격은 양면성이 있다. 부동산 시세도 마찬가지다. 주택가격이 지나치게 올라도, 지나치게 내려도 부작용이 따른다. 정부 당국이 주택가격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이유다. 한국의 경우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주택(주로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집값이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가 많았다. 그동안 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엔 집값 하락으로 인한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이른바 ‘깡통주택’ ‘깡통전세’ 우려가 그것이다.
경기침체·규제강화로 주택가격 약세
주택이나 전셋값은 지속적으로 오른다는 게 통념이었다. 하지만 그 통념이 14년 만에 깨졌다. 한국감정원 주택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전국의 주택 전세가격은 2년 전(2017년 1월 말)에 비해 1.42% 하락했다. 특히 아파트 전셋값은 같은 기간 2.67% 떨어져 하락폭이 더 컸다. 전셋값 하락은 경기침체와 연관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업체들이 몰려 있는 거제시의 전셋값이 전국 최대 낙폭인 34.98% 하락한 것이 이를 잘 설명한다. 전국 주택시장에 파급력이 큰 서울 ‘강남 4구’의 아파트 전셋값도 2년 전보다 0.82% 하락했다.
주택가격 약세는 경기부진 외에 보유세 강화, 금리 인상, 대출 억제 등 정책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기에 주택 공급이 늘어나면서 주택가격 약세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올해 전국에서 입주하는 아파트는 약 38만 가구로 평년보다 30% 정도 많다. 주택가격 변동은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서울 등 수도권 인기지역의 주택 가격이 오르는데도 지방 비인기지역은 되레 하락하기도 한다.
집 팔아도 대출·전세보증금보다 적어
주택가격과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깡통주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깡통주택은 집을 처분해도 주택담보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갚지 못하는 주택을 일컫는 말이다. 집을 팔아도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어 깡통전세라고도 한다. 깡통주택, 깡통전세는 주택시장 침체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해 전셋값 폭등 때만큼이나 어려움을 겪었다. 은행권 전세대출은 지난해 92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8.6%나 급증했다. 깡통주택, 깡통전세가 확산되면 부동산시장을 넘어 나라 경제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셋값이 떨어지면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임차인)은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2년(전세기한) 전에 높은 가격으로 전세를 준 집주인(임대인)은 주택가격 하락으로 전세금을 되돌려주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집값 하락폭이 크면 전세보증금보다 집값이 더 낮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세입자가 새로운 집으로 이주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생겨난다. 또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주택이 경매에 들어가는 악순환도 발생한다.
신동열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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