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정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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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와 시대의 아픔을 개성적 어법으로 끌어안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2015년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이후 4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닫힌 문을 두드리며 다정한 인사를 건네듯 온기 있는 말들로 삶의 슬픈 순간들을 조용히 들여다봤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박소란은 ‘문’을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손잡이’에선 ‘함께 가요 우리 문 저편/그럴듯한 삶을 시작해봐요’라며 ‘그럴듯한 삶’으로 가기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말한다. ‘외삼촌’에선 ‘무심코 곁방문을 열면/슬그머니 고개를 드는/외삼촌’이라며 망자와 연결해 주는 매개로 쓴다. ‘모르는 사이’에선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내 이름은 소란입니다’라며 언젠가 버스 문이 열리면 떠나갈 옆자리 모르는 이에게 인사한다. 모든 시엔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건네는 다정함이 있다. 그 다정함 뒤엔 울컥거리게 하는 슬픔도 숨어 있다.
울음으로 가득찼던 첫 시집과 달리 이번 시집에선 체념에 익숙해진 삶 속에서도 슬픔보다 아름다움을 더 찾는다. ‘깡통’에선 ‘사람을 원치 않는다’고 외치지만 ‘이 단단한’에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시를 쓴다/그러다 지치면 당신 품에 들어 쉰다’며 잠시 비루한 삶을 만져주는 애틋함을 들려준다. 그 애틋함엔 상상 속의 누군가가 숨어있다.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때론 투정도 하며 그리워하기도 하고, 잠시 안기기도 한다. 문 안쪽에서 건네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은 ‘전기장판’에 나오는 ‘어떤 슬픔에도 끄덕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일상의 슬픔을 달래준다. 박소란은 “닫힌 문을 열면 거기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끝내 들키고 싶었다”며 “닫힌 문 뒤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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