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랑스에선 부유세 논쟁이 한창입니다.
지난해 말 주말마다 파리를 시위 열기에 휩싸이게 했던 노란조끼 운동은 유류세(탄소세) 인상으로 촉발됐지만, 시위대는 정부에 부유세 부활도 요구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란조끼 시위대를 달래고 떨어지는 지지율을 회복하고자 지난달부터 ‘사회적 대토론’을 시작했는데 이 자리에서도 어김없이 부유세가 핵심적인 쟁점이었습니다.
마크롱 정부는 2017년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유세 과세 대상 자산을 고액 부동산으로 한정하면서 사실상 부유세를 폐지했습니다.
부동산 자산 외에 요트, 슈퍼카, 귀금속 등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죠.
이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은 ‘부자들의 대통령’이란 비판을 거세게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마크롱 대통령은 “소득세를 통해 이미 부자들의 부(富)는 재분배되고 있고, 부동산에 대해선 실질적으로 과세하고 있다”며 부자들이 세금을 결코 적게 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마크롱 대통령의 이같은 주장을 다시 한번 뒷받침 해줄 만한 통계가 프랑스 싱크탱크 iFRAP에서 나왔습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프랑스의 직접세 세수가 25%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입니다. 직접세로 걷은 금액이 7년 간 630억유로 늘어 총 징수액이 2500억유로에 달했다고 합니다. 직접세엔 소득세, 법인세, 부동산세, 상속·증여세, 사회보장세 등이 포함됩니다.
세금 명칭만 봐도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부자들이 더 많이 낼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iFRAP에 따르면 직접세 부담이 가장 높은 계층은 소득 상위 10%(소득 10분위)입니다. 이들은 월 평균 소득이 4623유로(약 590만원) 이상인 계층입니다. 2017년엔 상위 10%가 직접세 수입 총 2500억유로 중 52%(1300억유로)를 부담했습니다.
특히 소득세의 경우 70%가 이들이 납부한 것이었죠. 반면 소득 하위 30%는 직접세의 2%만을 부담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직접세가 프랑스 정부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반부터 감소했으나 최근 다시 늘고 있습니다. 2010년 총수입의 14.8%였던 직접세 비중이 2017년 18%로 3%포인트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번 조사에 부가가치세, 유류세 등 간접세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노란조끼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간접세 비중도 총수입에서 2.7%포인트 늘어났다고 iFRAP는 소개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소득 상위 10% 계층은 직접세뿐만 아니라 간접세까지 포함하면 전체 세수의 37%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국가 재정수입의 상당 부분이 이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죠.
하지만 흔히 ‘부자 과세’가 정치적 논쟁으로 들어가면 ‘상위 10%’보다 ‘상위 1%’라는 숫자가 더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프랑스에서 소득 상위 1%는 월 1만4000유로(약 1780만원) 이상 버는 계층입니다. 프랑스에서 37만9000세대를 차지하는 이 1% 부자들은 전체 소득세의 3분의 1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 비중이 일반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일각에선 나옵니다.
아녜스 베르디에 몰리니에 iFRAP 이사는 르피가로에 “조세 체계는 여전히 상위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30%의 부유층이 80%의 세금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은 숫자가 분명히 말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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