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원, 경비원 빼고는 다 중국 사람"
자국 경제에 대한 중국인 우려 반영
말레이시아 정부가 중국 선전을 모델로 의욕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이스칸다르 경제특구'가 자칫하면 중국인 도시가 될 전망이다. 원활한 개발을 위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자본을 중국 및 화교가 대고 있어서다.
중국의 해외 부동산 투자 열기가 고조되며 동남아시아 일대의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날로 커지고 있다. 그만큼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와 중국 투자자들이 감수해야할 리스크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스칸다르 경제특구는 말라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싱가포르를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다. 싱가포르와 연결하는 두 개의 대교가 건설되고 있어서 공사가 완공되면 싱가포르와의 시너지도 크게 나타날 전망이다. 홍콩을 등에 업고 빠른 경제 성장을 구가한 중국 선전이 연상되는 이유다.
2016년 11월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 2017년말까지 954억7000만링깃(약 26조4000억원)의 해외 자금이 투자됐다. 이중 중국은 303억9000만 링깃을 투자해 가장 많은 돈을 쏟아넣었다. 아울러 대부분 화교계로 분류할 수 있는 싱가포르 자본이 211억5000만링깃이다.
전체 투자의 54%가 중국인 및 화교계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다보니 이들 없이는 해당 프로젝트 자체가 굴러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개발이 본격화된 이스칸다르 경제특구 개발 현장은 중국 내 지역을 방불케한다. 청소원이나 경비용역을 빼고는 말레이시아인을 찾아보기 힘들고, 건설 인부부터 분양 사업자까지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언어도 중국어다.
배경에는 중국인들의 적극적인 해외 투자가 있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자위안(碧佳園)은 '산림도시'라는 해외 부동산 개발 브랜드를 런칭해 중국인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비자위안이 해외에 개발하는 산림도시는 호텔과 리조트, 아파트와 상가를 망라한다.
이스칸다르 경제특구는 비자위안의 산림도시 프로젝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비자위안은 이미 101억링깃(약 2조8000억원)을 여기에 투자했다. 중국 국내에서는 중국인 부자들을 상대로 투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해외 자산 투자는 2015년 80억달러에서 2017년 120억달러로 팽창했다. 중국 대기업들이 뉴욕에 있는 빌딩을 파는 등 자산을 처분하고 있는 흐름과 대비된다. 법인 단위의 투자는 줄지만 개인 단위 투자는 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다.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중국 경제가 악화되는 가운데 중국에만 자산을 보유해서는 부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 일부 자산이라도 해외에 투자해 중국 경기 하강에 따른 리스크를 헤지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비자위안과 중국 투자자들의 이같은 계획은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지난해 5월 93세의 나이로 대선에서 승리한 마하티르 총리가 이스칸다르 경제특구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특구 내에서 외국인이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소유권 이전 등기도 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경제 특구 개발을 중국 자본이 이끌며 과실 역시 그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말레이시아 내 여론에 따른 것이다.
관련 내용이 언론에 공표된 지난해 8월 주식이 폭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은 비자위안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특구 내 외국인 재산권에 대한 사항은 2016년 말레이시아 정부와 계약 당시 확정된 것으로 변함이 없다"는 내용이다. "마하티르 총리의 입장이 정확한 것도 아니다"는 해명도 뒤따랐다.
중국 국내 정치 동향과 정책 변화는 해외 투자자나 기업이 중국에 투자할 때 중요한 리스크로 간주되던 것이다. 이제는 중국인들도 해외에서 비슷한 고민을 해야하게 됐다.
이스칸다르 경제특구에서 차지하는 중국 자본의 비중을 감안할 때 소유권 이전 등을 완전히 백지화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해당 국가의 정서에 따라 중국인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도 높은 불확실성을 맡게 될 전망이다.
선전= 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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