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싱크탱크 ‘FROM 100’(이사장 정갑영)이 ‘골목상권’을 주제로 지난 28일 연 토론회(한국경제신문 후원)에서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골목상권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소상공인에 대한 체계적인 육성정책을 마련해야한다”는 의견을 쏟아냈다. 골목에서 강소기업을 키워낼 육성 전략에는 눈감은 채 여전히 임차인 권리강화, 최저임금 지원 등 보호에만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있다고 이들은 비판했다.
◆경쟁력 갖춘 골목상권 ‘산업’으로 부상
이날 발제를 맡은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골목상권에 자발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소개했다. 과당 경쟁의 대명사로 꼽히는 프랜차이즈, 학원, 영세 음식점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 콘텐츠를 담은 카페와 독립서점, 수제맥주 전문점, 베이커리, 공방, 갤러리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 교수는 소비 트렌드 변화를 이유로 들었다. “소셜미디어서비스(SNS)를 바탕으로 체험경제가 확산된 이후 젊은층들은 대로변의 유명 프랜차이즈와 대형 쇼핑몰을 벗어나 도심 깊숙한 골목이나 외곽에 위치한 골목상권에서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홍익대 중심의 골목상권은 인근 연남동, 상수동으로 확대됐고 이태원 중심의 상권도 경리단길, 한남동 일대 ‘꼼데가르송길’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을지로의 인쇄소 골목도 디저트 카페와 서점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방에선 광주 동명동과 강릉 커피거리, 양양 서핑비치 거리, 서귀포 이중섭거리 등이 자생적으로 탄생한 대표적인 골목상권으로 꼽힌다.
모 교수는 “시애틀의 스타벅스처럼 지역의 스토리와 정서를 담아 성공한 사례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됐다”며 “이에 맞춰 정부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소상공인들도 디자인과 콘텐츠 역량이 중요해졌는데 정부는 여전히 자영업 키운다면서 각종 보호책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에 대한 대표적인 과보호 문제로 임차인 보호가 꼽혔다. 모 교수는 “서울 임대료는 비슷한 소득 수준의 다른 글로벌 도시와 비교할 때 높은 편이 아니다”며 “홍대 등 주요 상권을 보면 최근 5년간 임대료가 48% 오르는 동안 인건비는 94%, 재료비는 77%가 올랐는데 정부는 소상공인 경영악화 주범으로 임대료만 지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호막 대신 제대로 된 육성 정책 내놔야
세미나 참석자들은 우리나라 기업 육성 정책이 기술 벤처기업에만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소상공인에서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돕는 로드맵은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진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상공인 분야도 체계적으로 공간을 기획하고 경영에 창의성과 문화를 입히는 등 전문가와의 협업이나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자금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은 우리나라의 소상공인에 해당되는 마이크로 기업을 분야별로 세분화한 뒤 간접 지원을 통해 역량을 높인다”며 “우리나라는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요인이 다양한데 ‘임대료 상승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획일적인 보호 위주로 접근하다보니 성장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모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미국 상장사의 절반 가량은 소상공인에서 출발했다”며 “우리나라도 전체 사업체수의 28%를 차지하는 골목 소상공인들이 더 경쟁력을 갖추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업체들이 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옥형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생태계조성과장은 “양양 서핑비치 거리, 강릉 커피거리 등은 민간 주도로 지역 문화를 가미한 상권이 조성되고 지자체와 정부가 주차장과 거리를 정비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한 대표적 사례”라며 “정부가 직접 지원을 통해 산업 육성을 주도하기 보다는 교육과 인프라 등을 측면 지원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등 소상공인들의 변화에 맞춰 정책도 세밀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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