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에서 오간 논의 자체를 놓고도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은 온전한 북한 비핵화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김정은) 위원장 동지가 미국의 거래계산법에 굉장히 의아함을 느끼고 생각이 좀 달라지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판을 깰 수도 있다’는 나름의 으름장까지 놓은 셈이다. 그러나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에 나서지 않으면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라는 방침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드러난 책임공방만 보고 쌍방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릇된 관점이다. ‘북한의 비핵화 거부로 인한 협상 중단’으로 봐야 한다. 제재로 궁지에 몰린 북한이 “비핵화 할 테니 제재를 풀어 달라”고 요청해 협상을 시작하고도, 온갖 위장전술로 핵 시설·무기의 리스트 공개와 검증 및 폐기를 회피하는 게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북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미국이 ‘회담 결렬’이라는 정공법으로 대응한 것이다.
또 궁지에 몰린 북의 대응책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부쩍 유화적 태도로 나오는 한국 정부를 더 회유하며 한·미·일 등 자유주의 진영 동맹을 이반시키려고 할 것이다. 우리의 지원을 최대한 이끌어내 경제난을 버텨내는 전략을 노골화 할 가능성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경제협력 공동체’라는 야심찬 구상까지 공개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회담 결렬 이틀 만에 키리졸브·독수리 훈련 사실상 폐지 발표가 나온 점도 걱정스럽다. ‘하노이 담판’ 실패로 경비초소(GP) 철수,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가 성급했다는 점이 확인된 마당에 한·미 연합군사훈련 전격 취소는 내용과 시점 모두 부적절하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거부했는데 ‘선제적 경제협력’을 거론하고, 군사 대비태세를 낮추는 게 온당한지 깊은 성찰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북이 끝내 ‘핵 보유국’으로 남을 경우 가장 큰 위협에 노출될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미국이 느슨한 태도를 보이더라도 단호하게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에 틈을 벌리고, 북한에 오판의 여지를 주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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