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논의 활발할 듯…연장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아
[ 백승현 기자 ] 대법원의 가동 연한 확대(만 60세→65세) 판결에 따라 정년 연장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즉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7년 이 법이 전면 시행되면서 만 60세가 일반적인 정년으로 인식돼 왔다. 주요 선진국에선 정년이 몇 살이고, 관련 법·제도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또 ‘가동 연한’ 확대는 정년 연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이 차별 안돼”… 미국·영국은 정년 기준 없애
세계적 추세인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따라 선진국들은 근로자 정년을 올리거나 아예 정년 기준을 폐지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정년 자체가 없는 대표적인 나라다. 1967년 정년을 만 65세로 정했던 미국은 1978년 70세로 상향 조정했다. 약 8년간 정년 70세를 유지했던 미국은 1986년 정년제를 폐지했다. 근로자 정년을 법으로 정하는 것 자체가 ‘나이를 이유로 한 또 하나의 차별’이란 여론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영국도 2011년 정년제도를 폐지했다. 이전까지 정년은 65세였으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연령에 따른 차별이라는 이유로 없앴다. 다만 경찰과 같이 불가피하게 육체적인 능력이 필요한 직업군에 한해선 정년이 유지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정년 폐지는 연금 수급 시기 등을 고려한 정부의 재정 건전성 우려와도 무관치 않다.
독일은 현재 정년이 만 65세이지만 2029년까지 67세로 연장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연금이나 수당 등 국가 재정 부담을 완화하려는 목적이 적지 않지만, 부족해진 숙련공의 기술 노하우를 더 활용하자는 취지도 반영됐다고 한다.
일본은 65세 정년, 70세로 연장 추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약 20년 앞서 1994년 정년을 60세로 하는 법을 개정해 1998년부터 시행했다. 2013년에는 근로자가 희망하면 65세까지 고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고용안정법을 개정했다. 근로자가 원할 경우 65세까지는 해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년이 65세로 늘어난 셈이다. 이후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공약을 계기로 ‘정년 70세’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오랜 불황 끝에 일자리가 넘쳐나면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정년 연장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늘어나는 정년에 발맞춰 ‘고용확보 조치’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확보 조치는 고령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에 △정년을 폐지하거나 △정년을 65세로 하거나 △정년과 별도로 65세까지는 고용을 유지토록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정년을 연장하는 조치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고용확보 조치와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만 60세를 넘긴 고령자 고용을 유지하거나 재고용하는 경우 임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인센티브 제도다. 정부는 60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 장려를 위해 장려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고령자 고용촉진법’을 연내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관련 법률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이런 움직임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만 62세여서 정년(60세)과의 일시적 소득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33년 65세로 늘어날 예정이다.
정년을 쉽게 늘릴 수 없는 이유
대법원이 육체 가동 연한을 늘렸다고 해서 곧바로 정년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년 연장은 당장 일하는 고령자에게는 일자리가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조업 구조조정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고용이 악화한 상황에서 섣부른 정년 연장은 일자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호봉제(연공급) 비중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임금구조가 정년 연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란 지적이 많다. 즉 젊을 때는 생산성에 비해 임금을 적게 받고, 나이가 들어 생산성이 다소 떨어지는데도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 탓이란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이 늘면 기업은 인건비 부담에 신규 채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갈수록 떨어지는 생산성은 별개의 문제다.
노동계도 정년 연장을 무조건 환영하는 입장이 아니다. 노인 복지 등 사회안전망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령 노동이 늘고, 이로 인해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1989년 대법원에서 만 55세였던 육체 가동 연한을 60세로 상향 조정한 지 24년이나 지나서야 정년 60세 법안이 통과된 것도 이 같은 복잡한 상황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NIE 포인트
한국의 정년제도(60세 퇴직)가 적정한지 생각해보 자. 또 주요 선진국의 정년제도와 비교해 장단점을 따져보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정년 연장과 청년 신규 채용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해보고, 어 떤 해법이 있을지 토론해보자.
백승현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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