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시행 중인 온실가스(CO2) 배출량 규제에 대해 유럽 자동차 업계에선 불만이 많습니다. ‘친환경’이라는 방향성에 대해서 동의를 하더라도 규제가 너무 급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죠.
프랑스 자동차업체 푸조·시트로엥그룹(PSA)의 카를로스 타바레스 회장이 3일(현지시간) 르피가로에 작심 인터뷰를 했습니다. “EU의 폭력적인 규제가 제조업자들을 무릎 꿇리고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호소한 것인데요. 그는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 회장도 맡고 있어서 유럽 차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타바로스 회장은 인터뷰에서 “유럽연합(EU)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가 1300만 개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며 “이미 지난해 EU의 CO2 배출가스 규제가 시행되고 불과두 달 만에 유럽 차 업계에서 2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동차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EU의 욕망은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꼬집었죠.
EU는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전체 CO2 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 비해 40%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2030년까지 승용차의 CO2 배출량을 2021년 수준보다 37.5% 줄이기로 정했습니다.
EU는 이미 수년 전부터 2021년까지 개별 기업들의 단계별 CO2 배출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해 왔습니다. 평균 판매대수를 기준으로 1대 당 연평균 CO2 배출량이 2015년 130g/km, 2020년 95g/km을 넘지 않아야 하는 식이죠.
지난달에는 버스와 대형트럭에 대해서도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9년 수준에서 30% 줄이기로 유럽의회가 잠정 합의했습니다. EU에서 버스와 대형트럭에 대해서도 CO2 감축 목표를 정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러나 타바레스 회장은 유럽의회의 이런 강압적이고도 급진적인 결정이 사회 전반에 실업 등 부정적인 외부효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자동차 회사야 문제 상황에서 할당량을 맞추고 방향을 바꿔서라도 탄력성을 유지하겠지만 결국 나쁜 효과는 기업 밖에서 나타날 것”이라며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부작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반문했죠.
또 “EU가 사실상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도 비판했습니다. EU의 압박으로 결국 차 업체들은 디젤차를 모조리 죽일 수밖에 없었고 전부 이젠 전기차만 바라보게 됐다는 것이죠. 그는 이 자체가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기차만이 해결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타바레스 회장은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지, 배터리 생산·재활용 시 탄소 배출량은 어떤지, 배터리용 희토류 추출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비롯해 재정, 세금 부담까지 모두 따져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사회적 논쟁에 1300만 명 근로자가 인질로 잡혀 있는데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년 후 내 손자가 나에게 ‘할아버지는 전부 전기차로 전환하기로 결정할 당시 모든 측면을 보고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나는 듣고 싶지 않다.”
타바레스 회장이 총대 매고 나선 이유입니다.
물론 그가 전기차 개발 자체에 반대한다는 건 아닙니다. 최근 프랑스와 독일이 나서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산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에 대해선 환영했죠.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업체의 배터리 의존율을 낮춰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타바레스 회장은 “이 주제에 대해 기업들이 연구를 많이 했지만 막대한 초기 자금이 필요한 데다 이익이 나지 않아 접은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계획에 대해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 “질식 수준인 유럽의 규제 여건을 뚫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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