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3만달러 시대…국민 삶은 더 팍팍해졌다

입력 2019-03-05 17:49   수정 2019-03-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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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급감, 삶의질 뚝
12년 걸린 '3만달러' 국민은 체감 못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1349달러
실업률 늘고 소득 양극화 심화



[ 고경봉/서민준 기자 ]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이 처음으로 3만달러를 넘어섰다. 2006년 2만달러 벽을 돌파한 지 12년 만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국민소득 잠정치를 집계한 결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1349달러(약 3449만원)로 전년(2만9745달러)보다 5.4% 늘었다고 5일 발표했다.

6·25전쟁 마지막 해인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다. 1960년대 산업화 기틀을 닦은 이후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1977년 1000달러를 돌파했고 1994년 1만달러, 2006년 2만달러를 넘어섰다.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나라는 20여 개국이다.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나라(3050클럽)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7개국에 불과하다. 외형상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3만달러 돌파를 체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자, 세금 부담이 더 빠르게 늘면서 실제 손에 쥐게 되는 여유자금이 확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분배지표, 고용지표 등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소득, 소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크게 앞지르면서 빈부 격차가 확대됐고 산업 구조조정, 정규직 중심 고용시장 재편도 양극화를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1만, 2만달러 초기 때와 비교하면 경제의 주 소비층인 중산층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다.

“3만달러 시대? 나는 아닌데”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가계 1인당 가처분소득은 1874만원(1만6573달러)에 그친다. 지난해에도 GNI 증가율을 감안하면 2000만원을 밑돈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이 1인당 3만달러 시대를 체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마저도 가처분 소득 증가율은 GNI 증가율에 비해 속도가 떨어진다. GNI가 2만달러를 돌파한 2006년 이후 GNI는 79.4% 늘었지만 가계 가처분소득은 69.0%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이자 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가계의 부동산 자산 비중을 나타내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건설자산 부문 순자본스톡’은 88% 늘었다. 들어오는 소득에 비해 주택 구입에 더 많은 돈을 쓴 셈이다. 이자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같은 기간 가계 부채는 138% 급증했다.

세금 부담도 가계 소득 증가를 가로막은 요인으로 꼽힌다. 경제주체별로 가계와 기업, 정부의 소득 비중을 살펴보면 기업은 5년 연속 줄었고 가계도 2016년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면 정부 소득 비중은 2016년 5%, 이듬해에는 3% 증가했다. 정부 세수가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계의 체감 경기는 악화됐다. 다시 말해 국민소득 3만달러는 정부 지출 덕에 일궈낸 성과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소득, 소비 양극화 뚜렷

2만달러 시대를 지나오면서 소득과 소비 양극화는 더 거세졌다. 중산층 일부는 자산과 소득이 늘어 고소득층으로 편입된 반면, 상당수는 소득 정체나 전반적인 고용 악화 등의 여파로 저소득층으로 하락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통계청의 지난해 3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소득 수준에 따라 전체 가구를 5단계로 나눌 때 최하위 20% 대비 최상위 20%의 소득 비율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고용 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전년 대비 취업자는 9만7000명 늘어 글로벌 금융위기에 시달리던 2009년 이후 최소였고 실업률은 3.8%로 2001년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해 빚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아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 수는 9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에게 ‘3만달러 시대’는 남의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양극화는 소비 행태에 그대로 나타난다. 2006년 이후 GNI가 79% 증가하는 동안 의류·신발 소비 증가율은 7.6%에 그쳤다. 같은 기간 롯데쇼핑, 현대백화점, 신세계 등 국내 백화점 3사의 매출 증가율은 38%에 달했다. 고소득층 소비는 늘었지만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지갑을 닫았다는 얘기다. 여행, 외식 분야에서도 이 같은 양극화가 뚜렷하다. 2006년 이후 국내 총소비 증가율과 음식·숙박 소비 증가율은 각각 60%, 16.2%에 그쳤다. 반면 한국인(국내 거주자)의 해외 소비는 101% 급증했다.

정부 소비 증가율 11년 만에 최고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잠정치는 2.7%로 집계됐다. 1월에 발표된 속보치와 같았다. 민간소비는 2.8% 증가해 2011년(2.9%) 이후 가장 높았고 정부소비 증가율은 5.6%로 11년 만에 최고였다. 하지만 건설투자는 4.0% 감소해 1998년(-13.3%) 이후 가장 낮았다. 설비투자도 1.6% 줄어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7.7%) 이후 최저였다.

지난해 명목 GDP는 1782조3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0% 늘었다. 국민들의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명목 GDP 증가율은 외환위기였던 1998년(-1.1%) 이후 20년 만에 최저였다.

■국민총소득(GNI)

한 나라의 국민이 국내외 생산 활동에 참여하거나 생산에 필요한 자산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 자국민(거주자)이 국외로부터 받은 소득은 포함되는 반면 국내총생산(GDP) 중에서 외국인(비거주자)에게 지급한 소득은 제외한다. GDP는 나라의 경제 규모를, GNI는 국민의 경제력(소득)을 파악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고경봉/서민준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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