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성공한 경제시스템
재정적자 외면한 '퍼주기 복지'
하이퍼 인플레이션 초래할 것"
[ 김현석 기자 ] “성장이 ‘부(富)의 불평등’을 줄이는 해결책이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사진)은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특강에서 “성장과 불평등 해소는 상호의존적이어서 불평등은 덜 성장하면 개선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5~1999년 재무장관을 지낸 루빈은 만성 재정적자를 흑자로 바꿨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 없는 호황을 뜻하는 ‘골디락스’ 경제를 실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등 아시아와 멕시코 등에서 발생한 외환위기 해결에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골드만삭스 회장(1990~1992)과 씨티그룹 고문(1999~2009)도 맡았다.
루빈 전 장관은 이날 시장경제의 정당성을 얘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시장경제와 관련해 양극화 등 많은 비판이 있고 일부는 맞지만, 문제는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경제 외에는 세계에서 성공한 경제시스템이 없으며 중국과 인도도 각각 1980년대와 1990년대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뒤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경제에서 파생된 문제, 예를 들어 비싼 의료비와 기후변화 등은 강력한 정치시스템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 투자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에 대해선 “이번에 타협할 수 있겠지만 구조적 해결책이라기보다 무역적자 해소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양국은 구조적 문제를 놓고 싸울 것”으로 내다봤다.
루빈 전 장관은 최근 미국에서 좌파 성향의 정치인과 경제학자들이 재정적자를 방치하고서라도 복지와 환경 등의 분야에서 ‘퍼주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그는 “어떤 이들은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화로 부채를 발행하기 때문에 적자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MMT: 현대통화이론)하는데 절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루빈 전 장관은 미 재무부가 국채를 마구 찍어내고 미 중앙은행(Fed)이 이를 사들인다면 기준금리는 낮게 유지할 수 있어도 민간금리가 급등하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인플레는 한번 시작되면 다시 통제하기 매우 어렵다”며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기대하면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은 세계에 기축통화를 공급해 막대한 이익을 얻어왔는데 달러를 마구 찍으면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루빈 전 장관은 부유세 도입 주장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세 회피 등으로 실제 세수가 늘어날지 자세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탄소세 도입에 대해선 “성장을 막는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라며 반대했다. 대신 “기후변화를 막는 데 대해 리베이트를 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아마존이 뉴욕에 제2본사를 지으려던 계획을 백지화하도록 한 좌파 정치권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뉴욕 토박이인 그는 “아마존이 뉴욕시와 주정부에서 받기로 한 30억달러는 보조금이 아니다”며 “아마존이 들어오면 각종 세금으로 280억달러를 낼 것으로 추정됐고 그중 일부를 리베이트로 돌려받기로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30억달러를 돌려줄 필요가 없지만 280억달러도 사라졌다”고 아마존을 쫓아낸 정치인들을 맹비난했다.
루빈 전 장관은 다가올 침체는 지정학적 요인, 중국·유럽 등의 경기 둔화, 경기 사이클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2008년처럼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를 부른다는 이유로 강(强)달러를 비난하는 것과 관련해 “강달러는 강한 경제의 증거로 나는 강달러를 원한다”고 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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