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도산 공포' 휩싸인 부품업계
[ 장창민 기자 ]
현대자동차를 따라 중국에 진출한 국내 부품업체들이 빈사지경에 내몰리고 있다.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판매량이 급감한 데 이어 현대차의 현지 합작사인 베이징현대가 1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하면서다. 중국 현지에 공장을 둔 중견 부품업체(1차 협력사 기준)의 연쇄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中 진출 이후 최대 위기”
7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 수는 145곳(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소속 기준)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기아자동차 중국 현지 법인인 베이징현대와 둥펑위에다기아에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다. 이들 협력사가 베이징과 창저우, 충칭, 옌청 등에 지은 공장만 390여 곳에 이른다.
중국에 나간 부품회사의 경영난은 이미 심각하다. 사드 보복 여파로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쪼그라든 뒤 2년간 공장 가동률이 50~60%대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재고가 쌓이면서 매출마저 뚝 떨어졌다. 절반 이상의 기업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차량 공조시스템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A사 대표는 “2017년 초 90% 이상이던 중국 내 공장 가동률이 최근 2년간 50% 아래로 떨어졌다”며 “공장 가동률이 80% 밑으로 떨어지면 수익을 낼 수 없다”고 토로했다.
중국 토종 완성차 업체들과 거래하지 않고 현대·기아차에만 의존하는 부품사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엔진 관련 부품을 생산해 물량 대부분을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B사 재무담당 임원은 “중국 진출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한숨을 쉬었다.
베이징현대가 이르면 다음달 베이징 1공장 문을 닫기로 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협력업체들이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생산능력(연 270만 대)에 맞춰 설비 투자를 해놓은 만큼 생산물량 자체가 쪼그라들면 매출 축소가 불보듯 뻔하다. 수익성도 더 나빠질 공산이 크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베이징 1공장 주변에 있는 협력사들이 납품처를 베이징 2~3공장이나 창저우 4공장, 충칭 5공장으로 옮기면 그만큼 물류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기아차는 50 대 50 합작법인이라 손실을 봐도 지분법 평가를 통해 절반만 인식된다”며 “부품사 대부분은 한국 본사에서 100% 출자한 경우가 많아 중국에서 난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사업장이 무너지면 한국 본사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자금난 더 심해질 듯
업계에선 중국에 진출한 부품사의 자금난이 더 심해질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중국 경기 둔화 추세가 이어지는 데다 현지 소비심리마저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나빠진 베이징현대가 협력업체에 추가 ‘CR(cost reduction·원가절감)’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점도 ‘악재’로 꼽힌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베이징현대가 2017년 사드 보복 사태 당시 한국 협력사에 석 달 넘게 부품대금을 주지 않고 납품가를 20% 낮추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며 “올해 추가 CR을 요구할 것이란 소문이 돌아 더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은행권이 부품사들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어음 할인 및 기존 대출 상환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등 ‘돈줄’을 죄고 있다. 올 들어선 부품사를 상대로 기존 대출의 상환 연기 조건으로 매출채권 및 재고자산 등의 추가 담보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기아차가 고정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추가 구조조정에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베이징현대의 1공장 가동 중단으로 현대차의 세전이익이 1249억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용차 생산·판매를 위해 설립한 쓰촨현대와 기아차의 현지 합작법인인 둥펑위에다기아도 수익성 확보를 위해 조만간 설비 감축 등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한 부품사 대표는 “추가 구조조정이 이어지면 중국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품사들이 예전처럼 현대·기아차에만 의존하는 관행을 깨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며 “중국 현지 업체를 포함해 해외 판매처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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