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혁파 손놓은 공무원 탓에, 본허가 못받고 사업화 무산
8년 개발 허송…남은 건 빚 5억
[ 김주완 기자 ] 2015년 5월 제3차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장관회의. 회의에 참석한 설완석 그린스케일 대표(사진)는 기대가 컸다. 정부의 인증제도에 막힌 자사의 ‘블루투스 전자저울’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옆에 앉은 설 대표의 애로를 듣고 “해결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해 10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블루투스 전자저울을 ‘신속 처리 임시허가’ 1호로 선정했다.
제도상으론 최장 2년간의 임시허가 기간 중 사업화가 가능해졌다. 그게 전부였다. 2년 후 본허가에 필요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 출시가 막혔다. 블루투스 전자저울을 농산물 이력관리시스템 등에 활용한다는 그의 꿈은 무산됐다. 8년에 이르는 개발기간에 남은 것은 5억원의 빚이었다. 현재 회사는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앞두고 있다.
10일 기자와 만난 설 대표는 “공무원의 소극행정은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사업 가능 희망만 잔뜩 부풀린 와중에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설명했다.
설 대표는 “제품에 문제점이 발견된 것도 아닌데 본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했다. 임시허가 기간 담당 공무원들이 법령 개정 등 본허가를 위한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설 대표의 경험은 규제 혁파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당시 정부는 임시허가 직후 실효성 있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는 임시허가를 1년 더 연장신청해야 했다. 2016년 10월 미래부는 임시허가를 연장해주면서 소관 부처인 국가기술표준원에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달라고 요청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 대표는 “미래부가 농림축산식품부도 관련 부처로 파악하고 정식으로 규제 개선을 요청했지만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시허가 종료(지난해 10월)를 앞두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난해 5월부터 과기정통부와 국가기술표준원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직접 호소하기 시작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도 제기했다. 감사원엔 담당 공무원들의 소극행정을 고발했다. 모두 허사였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그린스케일 건과 관련한 공식 해명은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지난 4일 국가기술표준원은 블루투스 전자저울이 2015년 9월 정식허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설 대표가 정부로부터 임시허가를 받은 것은 2015년 10월이다. 국가기술표준원이 밝힌 정식허가는 관련 저울에 한해서였다. 정부는 설 대표가 임시허가를 받은 내용(블루투스 통신을 활용한 이동식 전자저울 기술 및 농업 모바일 서비스)으로 정식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 국가기술표준원 주장이 맞다면 블루투스 전자저울은 합법적이라는 뜻이다. 당시 정부가 굳이 임시허가를 내줄 필요가 없었다.
설 대표는 “정부가 거짓해명을 하면서 여전히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전 정부의 ‘신속 처리 및 임시허가 제도’를 개선한 현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에 다시 한번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지난달 규제 샌드박스의 임시허가를 신청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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