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中 선전식 경제 개방이 북한에서 불가능한 이유

입력 2019-03-11 17:18  

권력은 1인 집중, 이동 자유 없는 사회
한국의 존재도 체제안정 의심케 할 것

노경목 中 선전 특파원



[ 노경목 기자 ] 기자는 지난해 8월 중국 선전(深 )에 부임한 이후 현지 기업인과 교수, 광둥성 및 홍콩 일대의 외국 기자, 외교관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여기서 자주 화제가 된 것이 북한의 경제개방 가능성이다. 선전을 중심으로 한 중국 개혁개방이 지난해 40주년을 맞은 가운데 북·미 간 화해 무드가 자리잡은 덕이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 과정과 북한 체제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사일수록 비관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집중된 북한의 권력 구조다. 중국은 1978년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서기에 앞서 정치구조부터 개혁했다. 마오쩌둥과 같은 단일 지도자 중심에서 탈피해 집단지도 체제를 정착시켰다. 문화혁명 시기 사회주의 사상과 조금만 어긋나도 극단적으로 공격했던 조반(造反)파에 대한 인적 청산도 있었다. 중국 정치분야의 석학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이 같은 정치개혁이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줘 인민과 간부들이 적극적으로 경제 발전에 뛰어들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광둥성과 푸젠성의 지방관리들이 외국 기업 유치와 국내 자본 축적을 위해 불법과 탈법까지 묵인한 것도 이 같은 믿음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김정은의 뜻에 따라 정책 방향이 요동친다. “지도자는 완벽하다”는 주체사상의 수령론하에서 잘못된 판단에 따른 책임은 실무자가 모두 져야 한다. 김정은 체제 초기 화폐개혁 실패로 총살당한 박남기 노동당 재정경제부장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 개혁개방 과정에서 나타난 관료조직의 유연한 의사결정과 빠른 상황 대처가 불가능한 이유다.

두 번째 문제는 북한 내부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강제수용소다. 여섯 군데에 최대 1380㎢(여의도의 476배 면적)에 이르는 강제수용소에는 15만~25만 명 정도가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권도 문제지만 일단 개혁개방을 단행하더라도 이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게 된다. 개혁개방 초기부터 후커우(일종의 호적제도)가 무력화되며 연해 지역에 농민공이 몰려들어 제조업체들에 좋은 사업 여건을 제공했던 중국과 대비된다. 1980년대 초부터 중국 지방정부 사이에 불붙었던 외국 기업 유치 경쟁도 북한에서는 나타나기 어렵다.

마지막 이유는 대한민국의 존재다. 한 중국 기업인은 “장제스가 양쯔강 방어선을 지켜 남방이 국민당의 손아귀에 있었다면 제한적인 개혁개방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개혁개방에 나서던 시기, 대륙을 30년 이상 지배하던 중국 공산당에 대만은 경쟁자가 아니었다. 덩샤오핑은 미국과 일본을 대만과 단교시키고 장징궈 당시 대만 총통에게는 “독자 군대를 가져도 되니 홍콩처럼 일국양제를 수용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국력의 차이만큼 한국으로 강력한 구심력이 작용하는 한반도에서 북한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체제안정을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다.

물론 제한적 개방도 의미가 있다. 핵폐기가 현실화된다면 그에 따른 긴장완화 효과도 폄하할 수는 없다. 다만 북한의 경제개방은 핵폐기와는 또 다른 장애물을 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저성장·저출산으로 요약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까지 한번에 해결해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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