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깨끗하고 안전하며 값싼 에너지는 없다

입력 2019-03-11 21:20  

"脫원전으로 에너지 경제성 악화
청결성 역시 최악으로 뒷걸음질
미세먼지 때문에라도 정책 바꿔야"

박주헌 < 동덕여대 교수·경제학 >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 사상 첫 닷새 연속 시행’, ‘반복되는 지진, 원전 위험하다’, ‘장관도 옷 벗긴 순환정전’, ‘전기가격 인상, 제조업 경쟁력 발목’…. 이젠 익숙한 에너지 관련 기사 제목이다.

어디 깨끗하고, 안전하고, 안정적이면서 경제적인 에너지는 없을까. 답은 불행히도 ‘없다’다. 석탄과 원자력은 저렴하지만 더럽거나 위험하고,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청결하지만 값이 비싸거나 수급이 불안정해 마뜩잖은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모순이다. 어떤 에너지원이든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는 불완전한 에너지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완전한 에너지를 적절히 섞는 ‘에너지 믹스’를 통해 에너지 모순의 조합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을 뿐, 약점 모두를 제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에너지 믹스는 어떤 어려움을 어떤 수준에서 감내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으로,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의사결정권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믹스에 대한 현 정부의 가치관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으로 요약된다. 청결성과 안전성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가치관이다. 이는 수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은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청결성과 안전성을 향상시키겠다는 정책목표 설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실제로 이 같은 정책목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수급 안정성은 높지만 안전성과 청결성에서 열위에 있는 원자력과 석탄을 줄이는 탈(脫)원전·탈석탄으로, 비싸고 수급 관리가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한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에너지전환정책으로 구체화됐다.

그러나 정책 전환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에너지전환정책은 경제성과 수급안정성에 상대적 우선순위를 뒀던 과거 정부들의 가치관을 뒤집는 정책 방향이다. 정부의 가치관이 바뀌면 에너지 믹스는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정책방향 선회로 예상되는 결과는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당연히 에너지전환정책으로 예상되는 가격인상과 수급안정성 저하가 우리가 감내할 수준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정직하지 않았다. 관련 부처 장관은 “탈원전으로 가격인상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라는 유명한 말로 에너지 모순을 너무도 쉽게 부정하며 여론을 호도했다.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계속 값싸게 사용할 수 있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나빠질 것으로 점쳐졌던 경제성과 안정성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악화됐을 뿐만 아니라, 정책목표인 청결성과 안전성마저도 뒷걸음질하는 최악의 결과가 줄줄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 국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제1의 온실가스 증가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며 깨끗한 에너지 공급에도 실패했다. 줄줄이 해외로 떠나는 원자력 전문인력과 폐과 위기로 내몰리는 대학의 원자력공학과를 보며 원전의 장기적 안전성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수급 안정성도 작년 8월 예비율이 7.7%에 근접하면서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경제적 부담은 커져만 간다. 한전은 지난해 6년 만에 적자로 전환해 2080억원의 손실을 냈다. 올해는 더욱 악화돼 2조원대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결국 전기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도대체 탈원전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 정직해져야 한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가격까지 저렴한 에너지는 없다는 에너지 모순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또 우리가 어떤 피해를 어느 정도까지 감수해야 할지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탈원전을 하려면 가격인상을 받아들여야 하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탈원전을 재고해야 한다.

에너지 모순이야말로 삼척동자도 다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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