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태웅 기자 ]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업체인 미국 오라클이 한국에서 다중 악재를 만났다. 한국 지사장이 돌연 사임한 데 이어 국세청의 세무조사까지 받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불거진 노조와 사측 간 갈등이 풀리지 않은 데다 실적 악화도 겹쳤다. 오라클은 한국의 데이터베이스(DB) 관리 SW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경쟁 업체들의 견제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노사 갈등 지속
지난 4일 김형래 한국오라클 사장이 내부 이메일을 통해 직원들에게 돌연 사의를 밝혔다.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톰 송 부사장이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한국오라클 측은 김 사장이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장기간의 노조 파업과 세무 문제 등이 겹친 ‘문책성 인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오라클 노조는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83일간 전면 파업을 벌이며 회사와 갈등을 빚었다. 2010년 이후 임금이 사실상 동결되고 불투명한 인사로 내부 불만이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일부 노조 간부만 남기고 대부분 노조원이 업무에 복귀했으나 노사는 여전히 대치 상태다.
업계에서는 오라클 본사 임원들이 파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김 사장을 직접 질책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달엔 인사관리를 맡은 전무가 급작스럽게 사임하기도 했다.
한국오라클 노조 관계자는 “지난 1월 국내에서 열린 ‘오라클 클라우드월드’ 행사에 본사 임원들이 방문한 다음부터 김 사장 경질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지난 6일 국세청은 한국오라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세 회피와 관련한 것 아니냐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2017년 4월 국세청은 한국오라클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약 2조원의 수익을 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의 법인으로 빼돌린 것으로 보고 3147억원에 이르는 법인세를 부과했다. 한국오라클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이번 세무조사가 한국오라클의 ‘실적 부풀리기’와 관련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오라클은 공공·금융회사 명의의 가짜 납품계약서를 작성해 클라우드 서비스 매출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한국오라클은 국내에 서버를 두고 있지 않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클라우드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최근 한국오라클 영업본부장이 징계 조치를 당한 것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세무조사가 진행 중인 것은 맞지만 자세한 정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클라우드 강세에 실적 악화
기업용 SW 시장이 클라우드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오라클은 한국에서 시장점유율을 잃고 있다. 한국 내 클라우드 시장점유율 1, 2위인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각각 자체 DB 관리 SW인 ‘아마존 오로라’와 ‘MySQL’을 앞세워 공략하고 있다. 한국IDC에 따르면 오라클의 한국 내 DB 관리 SW 시장점유율은 2014년 60.5%에서 2016년 58.1%로 떨어졌다.
전사적 자원관리(ERP)업계 1위인 독일 SAP는 자사 ERP에서 오라클 DB 관리 SW를 걷어내기로 했다. 2025년 이후 오라클·IBM 등 다른 DB 관리 SW의 기술 지원을 종료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전자가 SAP의 ERP를 도입하면서 오라클의 DB 관리 SW를 빼기로 했다.
한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오라클은 독점적인 DB 관리 SW 점유율에 의지했지만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였다”며 “AWS, MS 등의 업체와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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