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이를 망치는 부모' 닮아가는 스타트업 규제

입력 2019-03-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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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지원금은 늘었지만 규제는 여전
투자 부족해 유니콘 안 나온다는 건 착각

송형석 IT과학부 차장



[ 송형석 기자 ] “하지 마라”란 말을 달고 사는 부모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용돈을 주는 부모. 아이를 망치는 부모들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유형이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강요받은 아이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 행동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들은 십중팔구 도전정신이란 말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성장한다. 풍족한 용돈도 문제가 된다. 어린 나이부터 낭비벽이 생길 수 있어서다. ‘수단’인 용돈을 ‘목적’으로 착각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정책은 아이를 망치는 부모의 행태와 놀랄 만큼 닮았다. 금전적 지원 측면에선 미국 실리콘밸리가 부럽지 않다. 창업 지원과 관련된 올해 정부 예산은 1조1180억원이다. 융자나 보증, 투자를 제외한 순수한 지원금만 발라낸 수치다.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벌이는 부처는 지난해 7개에서 14개로 늘었고 사업 역시 69개로 확대됐다.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바보”란 얘기가 도는 이유다.

정부가 초기 스타트업 지원에 적극적인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정부 지원금 덕에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스타트업 사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제사(회사의 성장)보다 잿밥(지원금)에만 관심이 있는 ‘체리피커’들이 들끓고 있다는 점 역시 정부 사업의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란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 지원금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뛰어들 만한 사업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으면 생각지도 않은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한국이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에도 불구, 스타트업의 불모지로 불리는 이유다. 전문가들이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에 한국 법을 적용해본 결과 70%는 불법이었다. 40%는 규제 때문에 사업 자체가 불가능했고 30%는 일부 사업을 포기해야 시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올 들어 일정 기간 규제를 풀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도입됐지만 스타트업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일단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 심의 대상이 되는 데만도 4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어렵사리 임시허가나 실증특례를 받아도 끝이 아니다. 규제 유예기간이 최장 4년뿐이기 때문이다. 본허가를 위한 담당 공무원의 법적 근거 마련 의무가 없는 탓에 규제가 사라질지 여부를 미리 점치기 힘들다. 규제 샌드박스를 전시행정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지난 6일 열린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는 정부에 대한 스타트업들의 정서가 어떤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배달 오토바이에 디지털 광고를 붙이는 사업을 하는 장민우 뉴코애드윈드 대표가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실증특례로 2년의 시간을 벌어도 사업이 힘들다고 판단했고 결국 스스로 실증특례 신청을 포기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회의에 참석한 정부 측 인사들은 2년간 10대만 만들어 운영할 것을 종용했고, 오토바이 뒷면 광고 부착은 안 된다고 못박기도 했다.

같은 날 정부는 스타트업을 금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책을 하나 더 추가했다.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20개로 늘리기 위해 2022년까지 12조원 규모의 ‘스케일업(Scale-Up) 펀드’를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다음 창업자로 널리 알려진 이재웅 쏘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새 정책에 대한 소회를 내놨다. 그는 “기존 6개 한국 유니콘의 투자 유치 내용을 살펴보면 95%가 해외 자본인데 왜 돈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규제”란 이 대표의 목소리가 새삼 무겁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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