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한국에 미세먼지가 있다면 일본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는데

입력 2019-03-14 10:16   수정 2019-03-14 10:18


올 들어 한국은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공습으로 큰 고생을 했습니다. 미세먼지의 상당부분은 중국의 공업지대에서 만들어져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 비해 중국과의 거리가 멀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지형적 특성에 각종 친환경 정책을 앞서 시행한 까닭에 미세먼지 영향을 덜 받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신 매년 봄철이 되면 한국인들이 미세먼지로 고생하는 것 못지않게 일본인들이 힘들어 하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바로 ‘가훈쇼(花粉症·화분증)’라고 부르는 꽃가루 알레르기입니다. 일본인 4명 중 1명 이상이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관련 시장도 1조원대 규모에 이른다는 분석입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꽃가루 알레르기 시즌이 도래하면서 가훈쇼 관련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주요 도시 시내 약국 등에는 매장 주요 매대에 가훈쇼약이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인 1인당 평균 연 4000엔(약 4만원)가량을 가훈쇼약을 구입하는데 사용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3월경에 시작해 4~5월경에 정점을 이룹니다. ‘스기(杉)’나 ‘히노키(ヒノキ)’로 불리는 삼나무 계통 식물이 꽃가루를 어마어마하게 뿌린 탓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 수종으로 대규모 조림사업을 시행했는데 나무를 심을 당시에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가훈쇼로 고생하는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일본 인구의 4분의1~3분의1 가량이 ‘가훈쇼’를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300만명 가량이 꽃가루 때문에 적잖은 고생을 치르는 것입니다. 가훈쇼 환자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2014년에는 1996년 대비 가훈쇼로 병원을 찾은 환자수가 50%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꽃가루 폭탄’을 접하고 나면 얼굴이 눈물·콧물로 범벅이 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런 영향으로 봄철이 되면 많을 경우,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의 절반가량이 마스크나 꽃가루 방지 전용 안경을 쓰고 다니기도 합니다. 방송에선 꽃가루 예보방송을 내보내기도 합니다.


꽃가루 철이 되면 관련 약제 시장도 대목입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가훈쇼 관련 제약시장은 일본 내에서 1000억엔(약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됩니다. 인터넷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이 가훈쇼 환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올 1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가훈쇼 치료약 구입에 월평균 4500엔(약 4만5820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월 5000엔(약 5만900원)이상 쓴다는 응답도 22.7%에 달했습니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대처하는 신약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습니다. 도리약품은 지난해 면역요법 약물을 출시했고, 스위스 노바티스는 연내에 항체의약기술을 응용한 치료제를 판매할 예정입니다.

의약품 뿐 아니라 꽃가루 방지용품 시장도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화장품 제조업체인 고세는 올 1월에 피부에 꽃가루에 붙는 것을 방지하는 크림을 발매했습니다. 또 다른 화장품 회사 에스티도 지난해 말 꽃가루 방지 마스크를 선보였습니다. 식물성 추출물을 마스크에 묻혀 꽃가루에 따른 이비인후과 관련 질환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게 회사 측 주장입니다.

가훈쇼 관련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꽃가루 폭탄’이 경제에 드리우는 그늘도 적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훈쇼 탓에 외출이 줄고, 개인소비가 감소하면서 1인당 소비가 평균 5691엔(약 5만7900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올해 한국에선 미세먼지 탓에 마스크와 방독면, 공기청정기 등의 판매가 크게 늘었습니다. 일본은 꽃가루 알레르기로 관련 상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는 듯합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하루빨리 마스크나 약 없이도 맑은 공기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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