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위기의 보잉

입력 2019-03-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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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논설위원


[ 김태철 기자 ] “오직 믿을 건 사실(fact)밖에 없다. 사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다.”

세계 최대 항공우주기업 보잉(Boeing)의 창업자 윌리엄 보잉(1881~1956)이 생전 사무실 벽에 걸어놨던 액자 글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항공기 제작에만 집중했다. 그 덕분에 수차례 불어닥친 항공산업 위기에서도 시대의 흐름을 읽고 앞서나갈 수 있었다.

예일대 중퇴생인 그가 항공기 매력에 푹 빠진 계기는 191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에어쇼였다. 항공학교를 다니며 비행술과 항공기 구조를 익혔다. 엔지니어 조지 웨스터벨트와 1916년 보잉 전신(前身)인 퍼시픽항공을 설립했다.

전쟁은 소규모 업체였던 보잉의 ‘날개’를 활짝 펴게 했다. 보잉은 군용기 시장이 차세대 항공 기술과 수요를 선도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수송기와 폭격기 제작에 뛰어들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수송기 ‘모델 C’, 2차 세계대전 때는 B17, B29 폭격기로 명성을 날렸다.

보잉은 전쟁이 끝나자 여객기 제작으로 눈을 돌렸다. 전후(戰後) 세계 경제가 급성장하며 여행객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1963년과 1964년 각각 선보인 ‘B737’과 ‘B747’은 보잉을 세계 최대 민간항공기 제작사로 올려놓았다.

보잉의 독주는 유럽 경쟁자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개별 기업으론 보잉에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와 독일이 1969년 에어버스(Airbus)를 출범시켰다. 영국도 1978년 합류했다. 보잉과 에어버스가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들어간 것은 2007년부터다. 보잉 ‘B747’ 추락 사고를 틈타 에어버스가 그해 여객기 수주에서 보잉을 제치기도 했다.

보잉이 ‘압도적 선두’를 위해 2015년 내놓은 게 ‘B737 맥스8’이다. 동급 여객기보다 연료효율이 17% 정도 높다. 5000여 대의 주문이 몰리는 바람에 보잉이 한동안 추가 주문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구원투수’였던 ‘B737 맥스8’이 이번엔 ‘위기 제공자’가 됐다. 작년 10월과 최근 추락한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여객기와 에티오피아 국적항공사 여객기가 모두 ‘B737 맥스8’이다. 기체 결함이 의심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운항정지됐다.

기체 결함이 사실로 드러나면 보잉은 손해배상 등으로 거액을 지급해야 한다. 항공기 주문 취소로 인한 손실도 불가피하다. 향후 수년간 에어버스 독주를 지켜봐야 할 판이다.

하지만 ‘보잉의 위기’는 장기적으로 항공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신기술 개발이 더욱 치열해져 더 안전한 차세대 항공기 출시가 앞당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숱한 위기를 기회삼아 도약했던 보잉이 이번에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할지가 관심이다.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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