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권력이 출현한 것은 2세기 후반이었죠…개별 '취락'에서 '읍락'으로 사회통합이 광역화 됐죠"

입력 2019-03-18 09:00  

이영훈 교수의 한국경제史 3000년 (5) 족장사회 (상)


지금까지 호남에서 발굴된 3∼4세기의 취락은 모두 139곳이며, 그에 속한 주거지는 총 3749기다. 취락의 규모는 다양했다. 주거지가 100기를 넘는 큰 취락이 있는가 하면 10기가 못 되는 작은 취락도 있다. 취락의 표준 규모를 구하면 주거지 50∼70기다. 여기서는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 50기라고 하자.

앞서 당시에는 5명 안팎의 소규모 세대가 10개 정도 모여 하나의 세대복합체를 이뤘다고 했다. 그렇다면 취락은 세대복합체 5개가 모여 사는 공간으로 소속 인구는 250명 정도였다. 당시 한반도의 총인구는 얼마였을까. 앞서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아우르는 낙랑군의 인구를 대략 40만 명이라 했다. 그 남쪽의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의 인구에 관해서는 14만∼15만 호(戶)라는 중국 측의 기록이 있다. 호당 인구를 5명으로 잡으면 70만∼75만 명이다. 그렇다면 3세기 한반도의 총인구는 110만 명 정도였다. 물론 어림수인데,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당시의 사회·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인구수를 전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서울시 인구의 10분의 1 정도가 한반도 전역에 흩어져 살았다고 생각해 보라. 바다와 강의 물길이 닿는 지역을 중심으로 4400개 정도의 취락이 듬성듬성 이어져 있었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든 가운데 노루, 멧돼지, 호랑이 등이 서식하는 수풀이 울창했다. 사람들의 경제생활에서 어로, 수렵, 채취가 여전히 큰 비중을 지닌 생태 환경이었다.

권력의 출현

이 같은 환경에서 국가로 향하는 권력의 출현이 뚜렷해지는 것은 2세기 후반부터다. 고고학자들은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라는 새로운 묘제(墓制)에서 이 같은 역사적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여기서는 판상철부(板狀鐵斧), 단조철부(鍛造鐵斧), 따비, 철삽, 쇠스랑과 같은 철제 농구류와 환두대도(環頭大刀), 철촉(鐵鏃) 등의 철제 무기류가 대량 출토됐다. 자료사진은 경주시 사라리의 목곽묘 유적이다. 목관 아래의 목곽 바닥에 70여 점의 판상철부가 부장품으로 깔려 있다. 이 단계에 이르러 철의 독점은 이전 시대가 알지 못한 특수 신분으로서의 재지(在地)세력을 성립시켰다.

읍락

특수 신분의 출현과 더불어 사회의 정치적 통합도 훨씬 광역화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개별 취락은 환호와 목책으로 둘러싸였다. 그것이 3세기를 하한으로 해서 없어졌다. 다시 말해 개별 취락을 포섭하는 보다 넓은 범위의 정치적 통합이 성립한 것이다. 동시대의 중국인은 그것을 가리켜 읍락(邑落)이라고 했다. 부여와 고구려의 읍락에는 가(加)라 불리는 장이 있었다. 마한, 진한, 변한의 읍락에서는 거수(渠帥) 또는 장수(長帥)라고 했다.

읍락의 규모는 다양했다. 대개 직경 7∼13㎞ 범위에 전술한 규모의 취락 12∼20곳이 분포하고, 그 가운데 특별히 규모가 큰 중심 취락의 거수가 주변의 취락을 하나의 질서로 통합한 것이 읍락이었다. 읍락 간에는 함부로 넘을 수 없는 경계가 그어졌다. 읍락은 경계 안의 산지, 하천, 경지를 공동으로 용익(用益)했다. 나아가 읍락은 축제, 장례, 결혼 등 제반 의례의 단위였다. 삼한인들은 해마다 5월과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귀신에 제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술자리를 베풀고 떼를 지어 노래하고 춤을 췄다. 이 같은 농경의례는 읍락을 단위로 거행됐다. 묘지도 개별 취락이 아니라 읍락의 공동묘지로 조성됐다. 남녀 배우자는 다른 취락에서 구했는데, 그 범위는 읍락을 넘지 않았다. 혼인을 통해 맺어진 취락 간 혈연은 읍락의 공동체적 결속을 다졌다.(하 편에서 계속)

■기억해주세요

특수 신분의 출현과 더불어 사회의 정치적 통합도 훨씬 광역화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개별 취락은 환호와 목책으로 둘러싸였다. 그것이 3세기를 하한으로 해서 없어졌다. 다시 말해 개별 취락을 포섭하는 보다 넓은 범위의 정치적 통합이 성립한 것이다. 동시대의 중국인은 그것을 가리켜 읍락(邑落)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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