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만명을 사수하라"…초비상 걸린 중소도시들

입력 2019-03-18 17:50   수정 2019-03-19 08:55

지자체 '10만명 인구 사수' 총력전

10만 붕괴땐 조직·교부세 축소
영천·보령·밀양 등 '발등의 불'



[ 고경봉/김일규/임도원/이태훈/성수영 기자 ] 저출산·고령화와 지역산업 침체가 맞물리면서 지방 도시들이 존폐 기로에 놓였다. 최근 경북 상주가 인구 10만 명이 깨진 데 이어 경북 영천, 충남 보령, 경남 밀양 등 10여 개 시가 10만 명 붕괴 위기에 몰렸다. 천년 고도(古都) 충남 공주도 인구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미니 도시로 전락할 처지다. 시별로 전입자 혜택을 잇달아 내놓으며 10만 명 사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인구 이탈은 멈추지 않고 있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영천과 보령 인구는 지난달 현재 10만1000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한 달에 100~200여 명씩 줄어드는 추이를 고려하면 이들 도시 인구는 연내 10만 명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2010년대 들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도시 인구 10만 명 붕괴 사례가 올 들어서만 상주를 포함해 세 곳이 생겨나는 셈이다.

다른 지방 도시들도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구 12만~13만 명에 달하던 경북 영주와 밀양, 공주 등은 어느새 10만 명을 위협받게 됐다. 공주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두 달 동안에만 400명이 빠져나갔다.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지역 경기 침체→청년층 이탈의 악순환으로 인구 감소가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지방 중소도시들에 인구 10만 명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마지노선’이다. 2년 안에 인구가 10만 명 이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해당 시청의 국·실이 줄어들고 고위직 직급이 하향 조정된다. 중앙정부가 국세 일부를 떼서 나눠주는 지방교부세도 준다. 이 때문에 10만 명 붕괴 위기에 놓인 도시들은 각종 현금 지원은 물론 유모차와 쓰레기봉지 지원까지 당근책으로 내놓으며 눈물겨운 인구 대책을 펴고 있다.

타지역 학생 데려오고, 출산장려금 팍팍 주고

경북 상주시는 요즘 ‘초비상’이다. 지난달 인구 10만 명 선이 무너진 뒤 공무원들이 검은색 상복(喪服) 차림으로 출근해 화제를 모은 곳이다. 이 도시는 행정의 최우선 순위를 ‘10만 명 회복’으로 정했다. 대책반도 꾸렸다. 담당 공무원들은 경북대 상주캠퍼스에 출장민원실을 차렸다. 외지에 주소를 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입신고를 받기 위해서다. 전입 대학생에게는 전입 후 6개월이 지나면 6개월마다 전입지원금 20만원을 지급하는 등 4년간 최대 400만원을 지원한다. 출장민원실에서 전입신고한 학생에게는 컵라면과 손톱깎이 세트도 기념품으로 제공했다. 상주시 관계자는 “지난달 처음 인구 10만 명 선이 무너지면서 공무원들의 충격이 컸다”며 “전입신고라도 늘려서 10만 명을 회복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말했다.

중소도시 인구 10만 명은 ‘마지노선’

지방 중소도시들이 ‘인구 10만 명 수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 유출로 서울시 각 구도 다 넘는 인구 10만 명 밑으로 떨어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10만 명은 중소도시들엔 반드시 사수해야 할 ‘마지노선’과도 같다. 2년 연속 인구 10만 명을 유지하지 못하면 해당 시의 실과 국이 하나씩 줄어들고, 부시장 직급이 3급에서 4급으로 내려간다. 인구에 따라 정부로부터 받는 교부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구가 최대 선거인 수의 3분의 1 이하가 되면 다른 지자체와 선거구를 통폐합해야 한다. 지자체가 ‘현금 퍼붓기’를 통해서라도 10만 명 수성에 나서려는 이유다.

출산장려금 최대 6배로 늘린 영천

경북 영천시는 올해 출산장려금을 지난해 대비 최대 여섯 배로 올렸다. 첫째아이를 출산한 가정에 지난해 주던 지원금 50만원을 올해에는 300만원으로 늘렸다. 둘째아이는 12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셋째아이는 54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확대했다. 영천시는 지난 2월 기준 인구가 10만1109명으로, 10만 명대 붕괴를 눈앞에 둔 가장 ‘위험한 도시’다. 영천시 관계자는 “시 초등학교 입학생이 2017년 614명에서 지난해 553명으로 감소할 정도로 저출산이 심각해 이런 대응책을 마련한 것”이라며 “올해 두 개 초등학교는 6학년생이 없어 졸업식을 치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경기 동두천시는 그동안 첫째아이한테 주지 않던 출산장려금을 지난해 12월부터 50만원씩 주고 있다. 둘째아이는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셋째는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각각 장려금을 두 배로 올렸다. 전북 남원시는 기존 출산장려금에 더해 올해부터는 모든 신생아 부모에게 유모차 구입비 1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출산을 늘리기 위해 결혼 장려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전북 김제시는 조례 제정을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결혼축하금 300만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현금 퍼붓기식 단기대책으론 한계”

타지에 주소지를 둔 주민들을 전입시키기 위한 유치활동도 활발하다. 충남 공주시는 지난달 공주대와 공주교육대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입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신입생과 동행한 부모들에게 혈압·혈당 검사 등 건강진단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자녀 전입신고를 설득했다. 공주시는 전입 대학생에게 졸업 때까지 매년 20만원을 지원한다. 전입자를 유치하는 주민·기관에는 50만~300만원(전입자 10명 이상)을 지급한다.

지자체들은 귀농·귀촌 인구 유치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전북 정읍시는 귀농인을 대상으로 이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전북 내에서 오는 귀농인에게는 50만원, 밖에서 오는 귀농인에게는 100만원을 지급한다.

그러나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상당수 대책은 대부분 ‘현금 퍼붓기’ 식이어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면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가면서 혜택을 보지만, 현금 지급에 집중하면 수혜를 노리고 일시적으로 인구가 유입됐다가 혜택이 끝나면 다시 떠나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단기대책도 중요하지만 보다 멀리 보고 인구대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남 해남은 파격적인 출산장려금으로 한때 합계출산율이 2.47명으로 급격히 높아졌으나, 장려금을 받아 챙긴 뒤 다시 외지로 나가 예산만 낭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고경봉/김일규/임도원/이태훈/성수영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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