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위치표시 오차 줄인 내시경
혈관 손상 의료사고 최소화 가능
[ 양병훈 기자 ]
“의사가 내시경 영상을 보고 수술할 때 혈관이 어딨는지를 영상에 정확하게 표시해줍니다. 기존 의료기기는 혈관 위치 인식에서 실제와 영상 간 오차가 있었는데 이를 개선했죠. 수술하기가 한결 편해져 혈관에 손상을 입히는 의료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충희 인더스마트 대표(37)는 의료기기 ‘ITS Model-L’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TS Model-L은 배, 관절, 뇌, 요도 등 다양한 부위에 사용 가능한 내시경 수술용 의료기기다. 혈관에 조영제를 넣은 뒤 내시경으로 보면 수술용 모니터에 혈관이 눈에 잘 띄는 색깔로 표시된다. 이 덕분에 수술을 더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고 실수로 혈관을 절단하는 사고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기존 제품은 광선을 식별하는 이미지센서를 한 개만 쓰는 반면 ITS Model-L은 두 개를 활용한다”며 “이를 통해 혈관 위치 표시의 오차를 없앨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기를 활용하면 뇌동맥류 수술의 안전성과 정교함이 40%가량 향상된다”며 “이미지센서 두 개를 활용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한국 미국 중국 등 5개국에서 모두 41건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내시경 수술용 기기는 하나의 이미지센서로 가시광선과 근적외선(파장이 0.75~3㎛인 적외선)을 번갈아가며 식별한다. 가시광선으로는 의료영상을 만들고, 근적외선으로 조영제의 위치를 인식한다. 이 대표는 “두 광선을 시차를 두고 번갈아가며 인식하다 보니 의료영상 속 조영제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표시되지 않는다”며 “ITS Model-L은 별도의 이미지센서를 활용해 두 광선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조영제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나온 이 대표는 서울대에서 전기컴퓨터공학 석사와 바이오엔지니어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첨단의료기기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을 거쳤다. 전기연구원 동료들과 함께 2016년 인더스마트를 창업했다.
이 대표는 “전기연구원 근무 당시 러시아 연구기관 5곳과 함께 서울시의 ‘세계 유수 연구소 유치 지원사업’에 응모해 180억원을 지원받았다”며 “당시 연구했던 것 가운데 사업화할 수 있는 게 뭔지 서울대병원과 논의하던 중 ITS Model-L의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 창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인더스마트는 서울대병원의 각종 지원을 받고 있다. 창업 당시 서울대병원 교수 26명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 1주일에 한 번씩 인더스마트에 제품 기능 개선을 자문해주는 회의를 했다. 서울대병원이 지분 투자도 했다. 서울대병원은 23.9%의 지분율을 보유한 3대 주주다. 이 대표는 “서울대병원이 민간기업에 직접 투자한 첫 사례”라며 “당시 3개 부처 장관의 결재를 받는 등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ITS Model-L은 2014~2016년 국내 임상시험을 거쳐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품목허가를 받았다. 미국으로 연구용 장비 명목으로 한 개를 수출했다. 국내 판매실적은 아직 없다. 이 대표는 “시제품 테스트와 예산 편성·집행 기간 등을 감안하면 구매 의사를 밝히고 실제 구매하기까지 1년 정도 소요된다”며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동아대병원 등이 시제품 테스트를 하고 있어 곧 실적이 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성능 개선도 하고 있다. 인더스마트는 ITS Model-L의 후속 제품인 ‘ITS Model-L6K’를 지난달 출시했다. 기존 풀HD 제품에 비해 화질이 네 배 뛰어난 UHD 제품이다. 이 대표는 “같은 용도의 의료기기 중 UHD급은 세계 최초”라며 “풀HD급에서는 보기 힘든 미세혈관도 UHD급에서는 보이기 때문에 수술 중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허가받은 의료기기를 개량한 것이기 때문에 임상을 안 거쳐도 되지만 기기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 임상을 하기로 했다”며 “지난달 전임상을 시작했으며 올 연말에는 임상에 돌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더스마트는 미국에서 자회사 판매법인을, 러시아에서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큐캐피탈파트너스에서 190억원(지분율 28.4%)의 투자를 받았다. 이르면 연말께 코스닥 상장을 할 예정이다. 미국 외에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지로도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를 주름잡는 것처럼 의료기기를 국가 먹거리산업으로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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